시작의 쉼표
2021년 8월, 4년간의 국문학도의 배고픈 학문의 길을 마치고, 이제야 졸업이라는 매듭을 지었다. 졸업을 한 내 기분을 설명하자면, 시원 섭섭한 감정이 아니라 아쉬움과 후회, 슬픔으로만 가득하다. 졸업한 그날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1학년 때부터 4학년까지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치듯 지나갔다. 아, 이제 속수무책으로 학생의 신분을 박탈당하고 백수의 신분으로 살아갈 생각을 하니 한숨이 나오고 한편으로는 무서웠다.
여태컷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하나도 잘한 것은 없고, 실수는 물론이고 어설픈 자존심과 허영심만 가득했다. 그래서 현재의 나는 욕심은 많지만 허점 투성이에 결핍으로 가득 차서 어떤 일로도 나의 결핍을 채울 수 없게 되었다. 이 부족함을 달랠 방법으로는 이렇게 글로 투정 부리듯이 늘어놓는 방법이 그나마 있을 뿐이다. 이러한 생각에 깊이 빠져들다 보니 내가 우울에 잠식되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나름 밝고 말 많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칭할 수 있지만, 스무 살보다 지금의 나는 점점 의기소침해지고 두려움 때문에 도전과 용기를 거부하는 사람으로 변질되었다.
이러한 나를 보았을 때, 아직도 어리지만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몰랐던 세상과 사회를 알아간다는 것이 분명하다. 본격적인 취업 전선에 뛰어든 이 시기의 이십 대를 보내고 있는 젊은이들이라면 보통 인생에 그늘이 하나 드리워질 것이다. 이 그늘은 그동안 수고한 나에게 휴식을 주는 시간이 될 수도 있겠지만, 우울과 불안이 활개를 치는 시간이기도 하다. 불안한 미래를 위해 나아가고자 하는 갈피를 분명히 잡아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인내와 고뇌의 시간을 견뎌야 하고 주변의 각종 유혹들로부터 스스로를 경계해야 하는 시기이다. 그래야 빠르게 취업이 가능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고민하는 척도는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가’이다. 어쩌면 한평생 일하게 될지도 모르는 과업에 좀 더 애정을 갖기 위해서는 행복해하면서 일하는 것이다.(나의 소박한 바람이다.) 이 생각이 철없다 느껴질지도, 한낱 백일몽이라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 행복이란 성취이다. 주어진 일을 그저 우리가 살기 위해 밥 먹듯이 해치우는 것이 아니라 한 계단씩 올라가며 스스로 성장했다고 느끼는 행복이야 말로 나의 삶에 중요한 척도이며, 일상의 지루함과 거리를 두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대학 입시를 하며 국어국문학과를 오겠다고 마음먹은 뒤, 내 꿈은 줄곧 드라마 작가였다. 꿈을 꾸는 것은 유통기한이 없는 일이지만, 나는 꿈을 꾸기만 하면 곧 기한이 임박한 사람처럼 다급해져 결국 꿈을 자진해서 반납해버렸다. 대학에 오니 생각보다 글을 쓴다는 일은 너무 버거웠고, 시험 때면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B4 용지와 한두 문제를 제시하며 답안을 채우라는 것은 답안지의 여백처럼 머릿속이 온통 새하얘지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처럼 겁부터 내기보다 대책이 없더라도 꿈을 가진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런 내가 이제 각본은 아니어도 이런 어쭙잖은 글을 쓰고 있다. SNS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영감이 떠오를 때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일단 책상에 앉고 보는 것이라고. 이 말을 되짚어 보면서 혹여 글 쓰기가 그저 일이 되지 않을까 걱정부터 앞서기 시작했다. 적절한 문장을 조합하여 하나의 글을 만들어 내는 일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금방 싫증이 나버리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그냥 내가 수다처럼 늘어뜨려 놓은 말들이 제법 모양새를 갖추면 한 권의 책이 되기를 소박하게 바랄 뿐이다. 글을 쓰는 일을 친구에게 속삭이듯 털어놓는 나의 고민거리, 일기장 정도로 생각하면서 글을 벗 삼아 차근차근 작은 목표를 향해 실천하는 중이다. 그리고 이 글을 접하게 되는 모든 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이제 함께해야 할 동반자라고 생각하며 부단히 나아가기를 바란다.
대학 생활의 마침표를 찍었지만, 나는 마침표가 아닌 쉼표라고 표현하고 싶다. 내가 안고 사는 꿈들이 평면 종이에 불과하더라도 재생하면 입체적으로 눈에 보이는 듯한 페이지 한 장을 만들고, 자꾸만 펼쳐보고 싶은 나만의 궤적을 만들어 나가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 잠시 멈춰가는 그늘을 통해 그 아래에서 내가 행복해하는 시간을 만들자고 다짐해 볼 것이다. 이것은 끝의 마침표가 아닌 시작을 위한 쉼표이다.
그러니 당신도 당신의 인생의 다음 페이지를 위해 계속해서 쉼표를 그려나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