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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주 Oct 11. 2021

지난날의 눈사람에게

얼어붙은 계절


‘엄마, 아빠 눈이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조금씩 떨어지는 솜사탕같이 새하얀 눈송이에 활짝 웃으며 엄마, 아빠에게 소리 지르는 어린 시절의 나였다. 기뻐하는 나와 달리 엄마, 아빠는 내일 눈이 쌓이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눈발이 거세지기 전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속도 모르고 나는 연신 ‘펑펑 쏟아져라’는 말을 반복하며 내일 아침 눈을 뜨면 하얗게 변한 온 세상을 기대하며 잠이 들었다. 그러다 해가 뜨면 다른 날보다 조금은 다른 밝은 빛에 눈이 저절로 떠지게 되었다. 그 느낌에 창밖을 바라보면 정말 내가 바랐던 대로 세상은 온통 하얗게 변해있었다.

그 광경을 확인하고서는 바로 아빠에게 달려가 눈사람을 만들자고 그렇게 보챘었다. 엄마는 눈 때문에 집에서 꼼짝도 못 하겠다고, 녹은 눈이 얼어 도로가 미끄럽다고, 그렇게 눈을 원망하며 목도리를 꽉 매주셨다. 엄마의 하소연을 뒤로한 채 아빠와 함께 우리 집 옥상에서 내 손으로는 얼마 잡히지 않는 눈을 한 움큼 집어 들어 주먹밥을 만들듯이 열심히 눈 뭉치를 만들었다. 소복이 쌓인 눈 사이를 뛰어다니며 이 눈 뭉치를 아빠와 함께 열심히 구르고 굴려 커다란 눈덩이가 되면 위에 얹을 또 다른 눈덩이를 만든다. 어디선가 주워 온 나뭇가지, 나뭇잎, 돌멩이 등등 갖가지 재료들로 한 계절에만 존재할 수 있는 눈사람에게 생명을 불어넣을 방법을 찾아다녔다. 마침내 차가운 생명체가 탄생했다. 만들어진 눈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얼마나 보람차고 뿌듯한지, 햇살에 금방 녹아내려 곧 이별해야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에게 큰 기쁨을 선사해주는 존재였다.



하지만 이제야 눈이 오면  그리도 부모님이 걱정하고 한숨부터 내쉬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눈이 오고 나면 사람들은 녹은 눈에 미끄러질까 ,  떨어진 기온에 몸을 떨어야 할까 , 모두가 평소보다 움츠려야 하고 해야  일에 브레이크가 걸리기 때문에 그랬었다. 나는 혹시 눈이라도 쌓여 누가 거리에 눈사람을 만들어 두었다면, 언제 녹아 사라질지도 모르는 그를 보며 안타까운 감정이  지경에 이르렀다. 겨울에만 존재할  있는 눈사람에게 동질감을 느껴서일까? 아니면 내가 눈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그럼에도 지나가면서 웃음  , 그때의 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눈사람의 존재가 부러워서일지도. 정작 감정도 없는 눈사람에 현실의 나를 투영하며 즐거워하기도 가여워하기도 하면서 온갖 생각을 더하게 된다. 눈사람처럼  존재가 잊히게  것을 불안해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되어버린  오히려 우리의 계절이 얼어붙은  아닐까. 언제부턴가 각박한 일상에 눈사람처럼 꼼짝도  하고 주변을 돌아볼 여력없었던 것은 아닌지.


그래서 이번 겨울에는 눈이 귀한 내가 사는 지역에 눈발이 날리기를 조심히 바라본다. 그러면 밖으로 나가 눈송이를 한 번 굴려보며, 하얀 한숨 한 번 내뱉어 보려 한다. 얼어붙은 이 계절에 생동감이 흐르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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