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윤주 Oct 14. 2021

폼나게 살고 싶어

순간의 기록들


엄마는 늘 나에게 분수에 맞게 살라고 하셨다. 그런 엄마의 말에 '엄마 나는 내가 가난하다고 허덕이면서 살고 싶지도 않고, 내가 가진 게 없어도 남들 눈에는 폼나 보이게 살고 싶어'라고 반박했다. 엄마는 이런 나를 더 걱정하며, 그러다 보면 오히려 더 잃는 게 더 많다고 하셨다. 이어지는 엄마의 잔소리에 괜히 무리한 언쟁이 될까 '가진 게 없으니 잃는 것도 없어'라는 말까지는 애써 삼켰다.


그래, 자격지심이라는 걸 나도 안다. 이런 자격지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대학교에 다니며 나 자신을 입증하는 것에 혈안이 되었었다. 특히, 내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기록물이어야 나를 여실히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며 학생들을 대변하여 내 이름을 걸고 기사를 쓰고, 대학생 라디오 단체에서 작가, DJ 등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심지어는 단체의 대표라는 무거운 자리도 도맡아 했다. 그 뒤로도 꾸준히 나의 기록을 남길 수 있는 무언가를 자꾸만 찾아 쌓아 가면서 그것을 발판 삼아 다음 활동의 추진력을 얻을 수 있었다.


이렇게 기록으로 나를 증명하는  목말라하는 이유는 매초  순간 야속하게 흐르는 시간 때문이다. 가끔은  시간이 너무나 아쉬워 시계 침에 구질구질하게 매달려 잠시 멈출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다. 지금  찰나와 순간들이 행복해서 지나가지 않았으면,  기억에 조금만   순간이 머무를  있으면 좋겠다는 아쉬운 마음에 카메라 셔터라도 마구 눌러 1초라도 좋은 추억과 기록을 남긴다. 하지만 사진은 지난 추억을 끄집어낼 수는 있어도, 그때 내가 느낀 감정과 기분, 음식을 먹었다면 어떤 맛이었는지와 같은 구체적인 기억들을 오롯이 되살릴 수는 없다. 그래서 시작했던 것이 바로 '순간의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한 개인 블로그 운영이었다. 내가 갔던 맛집, 여행 그리고 활동과 일상에서 느낀 생각과 감정들을 기록함으로써 찰나와 순간들이 모두 영원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오직 기록용으로 무언가를 찾고, 의무적으로 하는 역효과가 나타났다. 어느새 나는 실상과는 다르게 블로그와 같은 활동 기록들만 보았을 때는 잘 먹고 잘 살고, 굉장히 활동적인 사람이었으며, 더 나아가 ‘행복하게 사는 척’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사실은 모든 일상이 좋지만은 않았는데, 기록은 미화되어 표현되기 일쑤 였다.


이는 스스로 쥐뿔도 가지지 못했다고 생각한 내가 폼나게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나의 아집이었다. 내가 가진 게 없다고 느낀 것은 결국 남과 비교를 했기 때문인 것이다. 비교 대상을 만들어 스스로를 갉아먹는 생각들은 '나도 괜찮은 사람이야', '나 이런 생각도 하는 사람이야'라는 말을 대신하는 보여주기식 기록물들을 만들어갔다. 이 사실을 깨달은 뒤로는 솔직한 나를 표현하려 노력했다. 일상의 아쉬웠던 점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한없이 부족한 나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가끔은 잘난 척도 하는 나의 모습들을. 그리고 여전히, 앞으로도 기록으로 나를 쌓아가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마주하는 일만큼 나를 객관화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하고 또 이것이 내가 생각하기에 폼나게 살아가는 유일무이한 방법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가난한 글쓰기를 계속해서 이어가려 한다.

이전 09화 나는 나답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