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그 라이크 어 페인팅 ㅣ 사진과 명화 이야기
<보그 라이크 어 페인팅 展>은 세계적인 잡지 보그의 아카이브에서 엄선한 이미지를 통해 패션 사진과 명화의 관계를 새롭게 탐구하는 전시입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명화를 통한 영감과, 현대적인 해석에 대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전시는 크게 여섯 가지 섹션으로 [초상화, 정물화, 풍경화, 아방가르드에서 팝 아트, 스페셜 섹션] 나누어져 있고, 각각 사진과 명화에 대한 재해석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Section 1 ㅣ 초상화
초상화는 초기에 단순히 왕족이나 귀족 혹은 성직자들의 모습을 기록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그려지다가 점차 그들이 지니고 있는 위엄과 신성함, 중대함을 그려 넣고자 하는 시도를 통해 발전하였고 오늘날에는 선과 획, 그리고 색을 통해 대상의 내면세계와 심리 상태를 드러내는 것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초상화 섹션에서는 초기 르네상스에서 시작하여 바로크와 로코코를 거쳐 20세기 초반까지 예술의 역사와 함께해온 초상화가 패션 사진계에 미친 파급효과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우측의 작품은 스페인 화가 Rogelio de Egusquiza의 'Lady in Blue Dress'라는 작품입니다. 패션 사진작가 팀 워커는 '사적인 세계'라는 이름으로 촬영한 이 작품을 통해 전체적으로 바로크적인 느낌을 강하게 드러냄과 동시에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여성의 이미지 또한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푸른색의 드레스를 입은 모델, 비슷한 구도를 통해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느낌을 주고 있는 위 작품은 작가 자신의 느낌을 더해 명화를 현대적으로 잘 해석해 세련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young woman with a water pitcher'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 이 작품은 코코쉬닉 이라 불리는 러시아의 전통 머리 장식에 대한 오마주라고 합니다. 마리아노 비반코가 촬영한 이 작품은 그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미지에 회화적인 느낌을 더하는 빛과 그림자의 뚜렷한 대조가 엿보입니다. 명화의 분위기나, 구도를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하나의 소품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작가의 창의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Section 2 ㅣ 정물화
정물화는 네덜란드의 바로크 시대에 회화의 한 장르로 출현하였습니다. 일부 예술가들은 빛과 형태를 연구하기 위하여 정물화를 그렸지만, 보통 예술가들은 정물화가 지닌 상징주의에 매료되어 만물의 본질적인 퇴락과 덧없음을 표현하기 위해 정물화를 그렸습니다. 패션 출판계에서 정물화는 미용이나 라이프스타일 관련 기사의 일러스트, 혹은 제품 사진에 예쑬적인 감각을 더하기 위한 도구 정도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렌즈 뒤에 숨어있는 예술가인 포토그래퍼들은 정물화의 뛰어난 구성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또 다른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내고는 합니다.
이 정물화 분위기의 작품은 이탈리아 초기 바로크의 대표적 화가 카라바조의 작품 '과일바구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사진작가 그랜드 코넷은 색감과 원근감, 그리고 사물의 배치와 빛의 조절을 통해 카라바조의 명화를 모방하였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된 그랜드 코넷의 작품들은 실제 물체를 찍은 사진으로 보기보다는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았는데요, 사진과 그림의 경계를 모호하게 보여주는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Section 3 ㅣ 로코코
로코코 양식이 사진에 영향을 미친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높은 채도의 파스텔과 골드 계열 색조를 사용하여 젊음과 사랑을 주로 다루는 로코코 양식의 작품에는 패션이 추구하는 영원한 젊음, 평화롭고 서정적인 풍경이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해당 섹션에서는 로코코 양식에서 느낄 수 있는 화려하고 강렬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배경으로 데이비드 심즈가 촬영한 위 작품은 로코코 시대의 화려한 실내 장식과 드레스를 통해 우리를 루이 14세 시절 베르사유로 초대합니다. 모델의 도전적인 눈빛과 포즈는 프랑스의 화가 폴 세자르 엘뢰가 즐겨 그리던 귀족 부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Section 4 ㅣ풍경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진화해온 풍경화의 기술과 구성, 모티브에서 영감을 얻은 사진작가들이 클림트, 보티첼리 등의 풍경화를 재해석한 작품들이 전시되어있습니다. 화려한 배경 속에서의 다양한 패션 사진들을 통해 현대적 패션 사진으로 재해석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보그 라이크 어 페인팅의 티켓 이미지인 '오필리아'입니다. 듀오 패션 포토그래퍼인 머트 알라스와 마르커스 피고트는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등장하는 비극적인 캐릭터 오필리아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하였습니다. 창백한 오필리아의 피부과 대비되는 식물의 색상은 오필리아의 비극적인 이미지를 더욱 강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로코코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한 번쯤은 접해 봤을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그네'입니다. 화려함을 특색으로 하는 로코코 시대에 여인과 꽃을 그린 풍경화는 가장 인기 있는 그림이었고, 쾌락과 풍요로움은 당시 화가들이 즐겨 다루던 주제였습니다. 풍부한 색채와 분위기 있는 배경을 특색으로 하는 그의 작품은 훗날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요, 팀 워커에게도 영감을 주게 됩니다. 16세기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저택의 정원에서 촬영되었다는 위 작품은 화려한 정원의 풍경과 액자에서 나와 날아오르는 듯한 모델의 강렬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Section 5 ㅣ 아방가르드에서 팝아트까지
해당 섹션에서는 20세기 예술의 급격한 흐름과 함께하여 패션을 예술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하게끔 한 시작점과 같은 미술 장르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마티스, 잭슨 폴락 등에게서 영향을 받은 상징적인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방가르드에서 팝아트까지 섹션에서 볼 수 있는 클리포드 코핀의 작품입니다. 1949년 여름 미국판 보그의 수영복 특집 기사와 함께 실린 이 사진은 수영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막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모델들의 얼굴을 볼 수 없는데요, 이는 초현실주의의 대가 살바도르 달리 같은 화가들이 보는 이로 하여금 불안함을 느끼게 하기 위해 종종 사용했던 기법입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배경과 의상, 보이지 않는 얼굴 서로 상반된 이 느낌들은 우리를 무의식의 세계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보그 라이크 어 페인팅은 현대 패션 사진들을 명화에 대입하여 각기 다른 시기의 걸작들을 우리 곁으로 불러와 주고 있습니다. 패션 사진은 어렵고 대중화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전시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는 명화의 재해석 작품뿐만 아니라, 사진을 통해 그림이 그려졌던 시대를 반영하고, 사소한 소품 하나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사진뿐만 아니라, 세월이 흘러도 후대에 많은 영감을 주고 있는 다양한 명화들 역시 함께 만나볼 수 있어 뜻깊은 전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