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공원을 걷고 들어와 샤워를 마쳤다. 나만의 아침 루틴이 끝난 순간. 친한 동생 은영이에게서 카톡이 하나 와 있었다. 언니... 식사메뉴 때문에 오늘 또 싸웠어. 속상해서 못살겠다다. 둘 다 맞벌이라 출퇴근시간이 비슷한 은영이 부부. 연애때부터 갈등이 있었는데, 오늘은 메뉴 때문에 작은 불꽃이 튀었나보다.
새로 프로젝트 맡은게 있어서 신경쓰느라 요새 힘들었거든. 오늘은 일어나기도 힘들더라구. 그래서 나가서 브런치 먹자고 했지. 근데 아침 안차려준다고 짜증을 내는거야. 메뉴때문에 싸웠다구. 처음에는 의아했는데, 듣다보니 메뉴에 감춰진 서운함이 들리기 시작했다. 은영이의 겉마음은 브런치였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요즘 대화도 줄었고, 남편과 데이트 한지도 오래되었다. 둘다 지쳐있었다. 분위기를 바꿔볼겸, 연애때 감정을 되살리고 싶었던것이다. 그 마음은 브런치먹자는 말로 표현되었다.
은영이의 남편은 된장찌개를 끓여달라고 했다고 한다. 정말 단순히 먹고 싶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은영이 남편을 오래 지켜본 입장에서 보면, 혹시 남편이 은영이가 해주는 음식에서 느껴지는 안정감을 원했던 건 아닐까 싶었다. 속마음은 당신이 해준 밥이 그리워. 아내가 챙겨주는 안정감, 집에서만 느껴지는 편안함, 엄마가 해주던 밥상에 대한 추억, 가정은 내가 원하는걸 요구해도 수용되는 공간이라는 소속감. 사랑받고 인정받는 느낌. 은영이 남편은 그 마음이 된장찌개 먹고 싶다는 말로 표현된건 아니었을까. 겉보기에는 메뉴 싸움이지만, 서로 다른 마음끼리 마주친 상황일수 있다. 은영이도 은영이 남편도, 두 마음은 자연스러운 욕구다. 은영이의 얘기를 듣다보니, 둘 다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그런데 그건 내가 제3자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당사자가 되는 순간엔 그렇게 못할때가 많다. 서운해지고, 감정이 확 올라올때도 있다. 그래서 은영이이 이야기를 들을 때, 둘다 그럴수 있어. 나도 그래. 이런 마음이 먼저 들었다.
은영이와 은영이 남편의 숨겨진 마음을 들으며, 문득 나의 아침루틴이 떠올랐다. 먼저 나를 돌보는 힘이 필요하다는 걸. 호수공원을 걸으며 내 마음 정리하는 시간갖기. 따뜻한 물로 몸을 깨우고, 향기좋은 바디로션을 바르기.명상하기.하루 시작 전에 나를 챙기는 그 시간들. 자신을 돌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온전히 나를 돌보는 5분, 그 잠깐의 시간을 갖는일이면 충분하다.그런 루틴이 쌓이면 타인의 말이 훨씬 편안하게 들린다. 내가 채워지니 비로소 상대의 속마음도 들을수 있게 된다. 내 마음이 지쳐 있으면 누구의 말도 온전히 들리지 않는다. 내 감정이 안정되면 상대의 욕구가 보인다. 관계의 여유는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나를 먼저 돌보는 작은 루틴에서 시작된다. 관계에서 싸움은 겉으로 드러나는 이유가 아닐때가 있다. 아픔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메뉴 때문이 아니다. 메뉴 뒤에 숨어 있던 마음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알아보는 힘은 언제나 나를 돌보는 여유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