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 씨는 '좋은 사람·나쁜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나와 잘 맞는 사람과 안 맞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나는 예전에는 잘 맞는다는 것이 말이 잘 통하고 취향이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춤을 배우면서 그 기준이 완전히 달라졌다. 잘 맞는 사람은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몸이 먼저 알아차리는 존재였다. 춤출 때 가장 먼저 들어오는 건 상대의 외모, 말투, 성격이 아니다. 손의 온도.리드의 안정감.미세한 템포. 체취.호흡.
이 모든 감각 정보가 말보다 훨씬 빠르게 내게 도착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과는 첫 동작부터 몸이 긴장한다. 평소 잘 유지하던 중심이 흔들리고, 밝았던 내가 이유 없이 눈치를 보게 된다. 그럴 때 나는 안다.
'아, 이 사람은 나와 결이 안 맞는구나.'
그 사람의 성격이 나쁜 것도, 내가 착해서도 아니다. 그냥 내 감각과 맞지 않는 사람일 뿐이다. 반대로 어떤 사람과 춤추면 별 설명 없이 바로 편안해진다. 그와 함께할 때 내 몸은 더 자연스럽고, 중심이 무너지지 않는다.그의 리드를 따라가다 보면 내 실력 이상의 움직임이 나온다. 안정적인 리드. 부드럽지만 필요한 만큼의 압력. 손끝으로 전해지는 텐션. 내가 편했던 건 기술 때문이 아니라 감각의 결이 맞았기 때문이었다.
현실에서의 관계도 똑같았다. 함께 있으면 이상하게 무기력해지고, 부정적인 감정이 쌓이는 사람이 있다. 반대로 별말 없어도 옆에 있으면 안도감이 드는 사람이 있다. 예전에는 이것을 단순히 성격 차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춤은 나에게 감각으로 알려주었다. 몸은 이미 알고 있다. 말보다 이유보다 감각이 먼저 알려준다. 어젯밤 전화 영어 수업에서도 같은 경험을 했다.
'How old are you?'
나이소개가 오가던 중 내가 5살 많았다. 마이클 선생님은 갑자기 한국어로 '누나?라고 말했다.
나는 빵터졌다. 그는 내가 편안함을 느끼도록 분위기를 조절할 줄 아는, 정서지능이 높은 사람이었다.수업이 끝난 뒤에는 내가 말한 문장 중 미숙한 부분을 정리해서 즉시 레포트를 보내주었다. 이런 템포와 감각이 맞으니 영어 시간이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5년 전에도 영어를 배운 적이 있었다. 그때는 재미도 없었다. 선생님의 피드백이 비난처럼 느껴졌다. 수업은 긴장의 연속이었고, 결국 두 달 만에 때려쳤다. 그때 느꼈던 비난받는 느낌은 영어 수업때만 드는 감정이 아니었다. 인간관계 중에도 그런 감정을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 감각과 결이 맞는 사람. 내 장점을 극대화시켜주는 사람. 내 중심을 지킬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인지. 사람은 좋다·나쁘다 기준으로 구분하면 안된다. 일방적으로만 잘못한 사람이 있지도 않다. 서로의 입장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다.
나는 사람을 만날때 기준이 바뀌었다. 그 사람 옆에서 편안한가.몸이 긴장하지 않는가. 중심이 유지되는가. 감각이 안전하다고 말하는가. 나와 감각이 맞나. 결이 맞느냐가 중요하다. 감각이 맞는 사람은 말이 적어도 편안하다. 생각이 달라도 공존할 수 있다. 나답게 움직이게 해준다. 반대로 감각이 맞지 않는 사람은 내가 나답지 못하게 만든다. 결이 맞는 사람을 알아보는 기준은 내가 나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느냐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