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쓰림이 있어서 초음파 검사를 하러 허유재 병원을 갔다。내과 진료실 3번방 앞에서 기다리는중。청소하는 여사님께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바닥 닦아야되서 우산 좀 치울께요。여사님은 젖은 우산을 들어서 수건위에 놓았다。
‘우산 많이 젖었으니까 한번 짜드릴께요。’ 고무장갑 낀 양손으로 젖은 우산 물기를 짜는 여사님。
누가 보든 말든 자신의 일을 자신이 만족할 만큼 묵묵히 하고 있었다。
‘입구에 비닐이 없던데요。 평소에 비취를 안해두나봐요’
‘오늘 담당자가 출근을 안해서 예산이 안나왔나봐요’
‘여사님이 일이 더 많아지셨겠어요、 수고가 많으시네요。 우산 짜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사님은 놀란 듯 나를 보며 말했다.
’이런 말… 거의 못 들어요. 기분 좋네요‘
그 말이 마음을 파고들었다.
몇달전, 다른 병원에서 만났던 여사님이 떠올랐다. 바닥을 닦던 그분은 밀대로 바닥을 닦으며 혼잣말을 했다。
‘비만 오면 일이 두 배야。。。’
‘여기 닦아야되니까 잠깐 비켜보세요’
말투는 날카롭고, 피로는 깊었다. 나는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순간 몸이 굳었다. 그런데 잠시후 그 마음이 이해됐다. 하루 종일 반복되는 뒤처리。 고맙다는 말 한 번 못 듣고, 쌓이는 감정노동。 자신의 힘든것도 돌보지 못한채 살아가는 일상。 그런 사람은 사람은 이런 방식으로 외부를 탓하는 방식으로 감정을 쏟아낼 수밖에 없다.
두 여사님 모두 인정받지 못하는 자리에서 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두분의 태도는 완전히 달랐다.
한분은 누가 알아줘야 풀리는 마음。 외부에서 구하는 방식이었다。 다른 한분은 아무도 몰라줘도, 내가 만족하면 된다는 마음이었다. 일은 같았지만 힘듦을 바라보는 기준이 달랐던 것이다.
그 차이가 말투를 바꾸고, 행동을 바꾼다。 사람의 온도를 갈라놓는다。
피곤함을 그대로 쏟으며 주변까지 긴장하게 만드는 사람。 그사람은 삶의 무게에 짓눌린 상태다。 도와달라고 아우성치는 외침이다。 하지만 잘못된 소통방식은 다른사람까지 긴장시킨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아도 내 기준으로 조용히, 묵묵하게 내 자리를 지키는 사람. 그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알아준다。 그 힘은 어떤 상황과 어려움도 헤쳐나가게 되는 원동력이다。 결국 사람의 온도는 상황이 만드는 게 아니라 자신의 마음의 기준과 태도에서 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