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이런 질문을 한다.
'저 사람은 나를 정말 사랑하는 걸까?'
부부, 연인, 친구...겉으로 보기엔 문제없어 보이는 관계.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알 수 없는 허전함이 남는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데도 내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느낌. 이 결핍은 많은 관계에서 너무나 흔하게 나타난다.
인스타 DM확인하러 들어갔다가 나오는 순간. <<영화 미포유>>에서 두 남자가 선물하는 장면 포스팅이 눈에 들어왔다. 루이자의 남자친구 패트릭은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목걸이를 선물한다.
'내가 직접 주문해서 만든 거야.'
반면 남자사람친구 윌은 루이자에게 스타킹을 건넸다. '이게 뭐야. 오마이 갓' 루이자는 초등학생처럼 펄쩍 뛰었다. 노란바탕에 검정색 가로줄무늬가 들어간 독특한 스타킹. 그리고 손편지를 건넸다.
두 남자가 루이자에게 한 선물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다. 관계의 방향을 드러내는 상징이었다.
목걸이는 정성스럽고 비싸 보인다. 스타킹은 소박하고 사소해 보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착각한다.
'저 사람은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내가 예민한걸까?'
우리는 사랑을 비용과 희생의 양으로 판단하려 애쓴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질문 하나를 놓친다.
'이 관계에서 나는 나답게 살아가고 있는가?'
이 장면의 핵심은 누가 더 좋은 남자인가가 아니다. 패트릭의 선물은 그 대상이 자신이다. ‘나의 선택, 나의 성취, 나의 관계’ 안에 루이자를 위치시킨다. 윌의 선물은 그 대상이 루이자였다. ‘너는 이런걸 좋아하는 사람이지’라며 루이자의 세계를 그대로 인정했다. 여기서 드러나는 건 사랑의 형태가 아니라 방향성이다.
어떤 옷은 비싸고 고급지다. 하지만 꽉 끼고 숨도 잘 안쉬어진다. 그리고 걸음걸이까지 어색하다.
어떤 옷은 화려하지 않지만 편안하다. 옷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 내가 더 나답게 존재할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경제적 안정과 의존이 편하다면 패트릭 같은 사람이 필요할 수 있다. 정서적 교류와 존재의 인정이 중요하다면 윌 같은 사람이 맞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좋은가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은 어떤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인가. 어떤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인가이다.
사랑은 시험 문제가 아니다. 정답 하나를 고르는 게임도 아니다. 언제나 중요한것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아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일. 관계의 본질은 자기인식과 이해에서부터 시작된다.
사랑은 누군가를 소유하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가 나로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일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기준은 언제나 나 자신에게서 시작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