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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경 Oct 24. 2024

14층의 벽

주문

“이제 그 아저씨 절대 부르지 말자. 으으 기분이 영 별로야. 알았지?”

모닝커피를 따르며 나는 심각하게 말했다. 남편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왜? 아니 난 이렇게 좋은 이웃이 있다는 게 기적처럼 느껴져. 아니 남의 집에서 흘러나온 음악 소리를 감상하려고 복도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니, 그건 예술 영화에나 나올 법한 얘기잖아? 이런 사람이랑 친구 하는 것도 괜찮지 않나? 뭐 친구까지야 되진 않겠지만. 그냥 멋지구먼?”

남편은 이미 미스터 14D에게 반한 것처럼 그를 두둔했다. 할 수 없이 나는 새벽에 꾸었던 악몽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흥미진진하다며 내 꿈에 감탄하더니 슬그머니 소파 밑에 털썩 무릎을 꿇고 앉았다.

“혹시 이것 때문에 그래? 이런 거로 예민해지는 거 제발 하지 마. 내가 깨끗하게 지울 테니까. 봐! 이렇게 비비기만 해도 지워지고 있잖아? 그나저나 그 꿈 말인데 정말 멋지다. 그 아저씬 어떻게 남의 꿈에서까지 음악을 듣는 거지? 게다가 우리 집 스피커까지 맘에 들어하다니. 놀라워. 아니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꿈이라지만 내 CD랑 오디오를 다 부숴버렸단 말이야? 너무해. 정말 악몽이 맞긴 맞네. 내가 들어본 꿈 얘기 중에 정말로 가장 무서운 얘기네. 진짜 소름 끼친다. 나한테 숨겨둔 불만 같은 게 있으면 그냥 말로 해라.”

“휴, 그게 뭐야.”

나는 기운이 빠져 아무렇게나 대답해 버렸다. 남편은 얼룩을 지운다며 카펫 클리너 스프레이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카펫은 점점 더 지저분해지고 있었다. 남편에겐 저런 걸 깨끗하게 지우는 능력이 상당히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도와주지 않았다.


물론 희미해지긴 했다. 하지만, 오히려 넓게 퍼진 두 개의 동그란 갈색 점은 우리 집에 안겨진 실수처럼 반짝거렸다.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보고 있어도 비눗물에 뭉그러진 카펫의 표면이 느껴졌다. 바닥에서 기분 나쁜 기름기와 쇠붙이 같은 냄새가 피어오르는 건 나의 착각일까? 나는 구두 굽에서 흘러내리는 액체를 떠올렸다. 끈끈한 정념 같은 그런 것 말이다. 아아...... 툭툭 털어 버릴 수 있는 게 아닌 것이다. 이걸 어쩐다? 나는 뭐 유난스러운 여자는 아니다. 결벽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번만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카펫을 통째로 다 뜯어버리고 싶다고. 나는 14E 우리 집 벽을 바라보았다. 14D. 건너편에 그 구부정한 노인의 한쪽 뺨이 닿아 있다? 그의 표정이 벽을 뚫어 버릴 것 같다. 이건 꿈도 아니고 보이는 현실도 아니다. 하나의 그려진 이미지다. 하지만, 나는 그 남자가 뭔가 나쁜 쪽으로 특별한 사람이라는 걸 그냥 알아 버렸다. 알아버린 것은 내 의지가 아니다. 그가 알 수 없는 주문 같은 걸 외우는지도 모른다. 아니다! 모든 게 내 엉뚱한 악몽에서 비약된 걸지도 모른다고 믿자. 내 억지다짐에 메아리 같은 게 들렸다. 하하하 엉터리야······엉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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