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 7년 만에 미용실 가기 프로젝트
둘째는 돌보기 수월한 성격이었다. 계속 엄마를 찾으며 말이 끊이지 않았던 첫째. 둘째는 한창 말할 나이인 두세 살 때도 엄마를 찾는 일이 많지 않았다. 혼자 인형을 가지고 논다거나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자신의 세계에서 스스로 놀잇감을 찾는 둘째를 나는 '딸이라 키우기 수월하다'라고 평가하며 그렇게 세월을 보냈다.
수월할 줄 알았던 둘째 키우기는 둘째가 여섯 살이 되던 해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어느 해 가을, 하얀색 조끼 패딩을 입혔는데 제법 맘에 들었는지 매일같이 유치원에 입고 다녔다. '매일 같이'가 '매일'로 바뀌어 여름 어느 날까지 패딩을 입지 않으면 유치원에 가지 않았다 이쁜 옷을 입히고 싶은 엄마 마음이 요동치던 날, 유치원 원장님은 "둘째 입고 싶은 대로 입혀주세요. 더우면 벗을 거예요." 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겨주길 되려 당부하셨다.
머리카락도 패딩 같았다. 똑 단발을 유지하며 귀여움을 자랑해 온 둘째는 어느 순간부터 머리카락 자르기를 거부했다. 무슨 말로도 미용실은 절대 가지 않는 둘째. 왜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지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갈 무렵에는 앞머리가 턱 끝까지 자라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시력이 나빠질 게 걱정됐지만 도통 설득이 먹히지 않는 아이 었다. 앞 뒤로 점점 자라는 머리카락을 자르기 위해 타협점을 찾은 건 결국 안과를 방문한 뒤였다.
의사 선생님께서 "앞머리 계속 기르면 안 돼. 시력 나빠지니까 꼭 잘라야 돼." 하는 말씀 한 마디에 둘째는 눈썹이 보이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내게 가위 들기를 허락했다. 2주에 혹은 3주에 한 번씩 앞머리를 자르는 행위를 반복하면서 뒷머리가 길어지는 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 가을 문턱에 접어든 어느 날 둘째가 별 이유 없이 "머리카락 자를 거예요."라고 내뱉는다. 아이 아빠와 나는 무심히 "그래? 알았어" 답했지만 몰래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 집 국경일로 정하자며 뿌듯해했다.
7년 만에 미용실 의자에 앉게 된 우리 둘째.
"'허쉬 컷'으로 잘라주세요. "
초등학생이 당당히 허쉬 컷을 요구하는 모습을 보고 당황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하던 미용실 선생님.
둘째는 7년간의 기다림을 당당히 허쉬 컷으로 바꾸고 이쁘게 지내고 있다.
나는 딸아이인 둘째가 내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겪지 않길 바라며 내 모습을 딸아이에게 투영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쁘고 공주처럼 자라길 바라는 내 마음은 '핑크 옷만 고집하거나' '내복만 입거나' '패딩만 입었던' 우리 아이의 성향과 부딪히며 충돌하기 일쑤였고, 현명한 우리 둘째는 스스로 가는 길을 고집스럽게 택해왔다.
누구보다 이쁜 우리 둘째, '남과 비교하지 말 것'을 '스스로 잘 커내 갈 수 이다는 것'을 나에게 일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