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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여인 Aug 04. 2023

1학년 3반이라 참 좋았습니다

학부모님, 무조건 좋은 마음으로 협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2019학년도, 1학년 교실

독특한 아이 두 명을 만나 유난히 힘들었던 해이다.

유별난 행동을 하는 아이들 뒤에는 특별한 가정환경이 뒷받침하고 있는 게 보편적인 일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배려하는 마음을 싹 틔워주기로 작정하고, 울고 웃으며 1년 세월을 보내리라 다짐했다. 나는 교사 경력 35년째, 누가 뭐라 해도 베테랑이 아닌가. 초등학교에 처음 들어온 이 햇병아리들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성장시킬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베테랑도 난관에 부딪칠 수 있는 법, 남들과 똑같이 힘들고 지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때로는 학부모 집단 상담을 준비하기도 하고, 학부모와 조부모 개별 상담, 기관장 특별 상담, 특수교사와 수시로 대면 상담까지 자처하면서 인성 교육에 열을 올렸다. 거의 매일 반복되는 거친 행동으로 교실이 어수선한 가운데,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힘든 아이가 있는 반 교사들은 모두가 나와 똑같은 스케줄을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분노 조절이 안 되어 무작정 떼를 쓰는 아이를 혼자 감당하기 힘들 때는 옆반 선생님들한테 도움을 청했다. 시간적 여유가 조금 있을 경우에는 돌발 상황을 즉각 해결하기 위해, 상담선생님께 전화로 도움을 요청했다. 그때 동학년 선생님들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중간에 스스로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5학년이 된 아이들,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겠지, 생각하며 학부모님들께 보냈던 마지막 편지를 한번 들춰본다.




1학년 3반이라 참 좋았습니다.

오늘은 토요일이지만 짐을 정리하러 교실에 왔습니다. 꿈담 교실을 짓느라 방학과 동시에 공사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팔을 걷어 부치고 교실을 한 바퀴 휙 둘러보았습니다. 칠판에 붙은 아이들이 꾸며놓은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저것들을 모조리 떼어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잠시 슬픈 생각이 듭니다. 무엇부터 정리를 해야 하나? 우선 교탁 주변부터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빨간 바구니 안에 조그만 상자가 나왔습니다. 나팔꽃씨를 모아 놓은 상자에 까만 알갱이들이 잔뜩 들어있습니다. 점심을 먹은 뒤 꽃구경을 하자며 운동장으로 데리고 나갔을 때, 텃밭 주위에 아이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때 신기한 듯 아이들이 주워온 씨앗들입니다.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아이들의 작은 손가락에 묻어나던 정감이 씨앗 안에 숨어 있습니다. 이리저리 신나게 꽃씨를 찾아다니던 아이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책상 속 구석구석을 뒤져내 보니 새 지우개들이 많이 나옵니다. 지우개 좀 빌려달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수업 중이라 세심하게 찾아보지 않고 그냥 없다고 말했는데 후회가 됩니다. 그때 돌아서며 친구한테 빌려가던 아이의 뒷모습이 떠오릅니다.     


한참을 정리하다 보니 크고 작은 색종이들이 서랍 안쪽에서 잔뜩 나옵니다. 종이접기 시간에 색종이를 똑같이 아이들한테 나눠주었었지요. 다 만들고 난 뒤에 또 만들고 싶다며 색종이 하나만 달라는 아이를 그냥 돌려보냈습니다. 그때 왜 더 친절하지 못했을까 자꾸만 후회됩니다. 이제는 색종이가 아무리 많아도, 더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는데.     


서랍장 위에 매실청이라고 담가놓은 병을 이제는 비워야 합니다. 오월의 끝자락 어느 날, 교정을 돌며 아이들과 함께 주웠던 매실입니다. 줄을 서서 한 숟가락씩 설탕을 넣는 아이들의 기대까지 유리병에 꼭꼭 눌러 보관하였습니다.

그런데 방학을 마치고 난 어느 날, 아이들과 함께 매실차를 타 먹으려고 병을 살폈습니다. 그때, 알맹이가 형체도 없이 녹아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매실청을 담그던 그날이 떠올랐습니다.

한 아이가 말했었지요. “선생님, 그건 매실이 아니라 살구예요.” 자세하게 살피지 않고 아이의 말을 존중하지 않고 매실이라고 우겼던 게 후회됩니다.


모든 어린이들이 교육활동을 즐겁게 참여하는 모습에 도취되어 재미없어하는 한 명의 아이까지 억지고 끌고 나갔습니다. 왜 재미를 못 느끼는 걸까? 그 원인을 곰곰이 따져보지 않고 찬찬하게 살펴보지 못한 게 후회됩니다.


아무래도 저는 죄를 많이 진 것 같습니다. 힘에 부치더라도 조금 더 세심하게 다독여 줄 것을. 바쁘더라도 조금 더 정성 들여 살펴 줄 것을. 제시간에 나가야 할 진도가 아무리 빡빡하더라도 아이 하나하나마다 개별지도 해 줄 것을. 처리해야 할 업무가 쌓여도 더 많이 함께 놀아 줄 것을. 교실 안에서 쉴 틈 없이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하지만 헤어짐을 앞에 둔 지금은 모든 것이 후회 투성이입니다. 잘해 준 것보다 못해 준 것만 생각나니 이 일을 어쩌나요.


아이들과의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11월 생일파티 시간이었습니다. 생일을 맞은 아이들이 떡케이크를 앞에 두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순간이었지요. 누군가 갑자기 소리쳤습니다.

  "우리 선생님도 11월이 생일이야."

  아이들은 갑자기 즉석에서 색종이에 카드를 만들고 하트를 접느라 조용해졌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교탁에 수북하게 쌓인 생일카드를 보면서 감동을 받았지요.      


통합 교과시간에 '우리 반 6대 뉴스'를 정할 때 또다시 놀라고 말았습니다. 모둠별로 학예회, 알뜰시장놀이, 빙상 체험, 현장체험학습, 입학식 등을 정한 아이들은 ‘선생님의 생일파티’까지 6대 뉴스로 넣었습니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생각해 주는 만큼 아이들을 생각해 주었는지 뒤돌아보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제 모든 아쉬움은 뒤로 하고, 저는 아이들이 남기고 간 나팔꽃씨를 텃밭에 심으려고 합니다. 2학년이 된 우리 반 아이들은 오다가다 텃밭에서 자라는 꽃들을 볼 수 있을 테지요. 그리고는 무척 뿌듯해할 것입니다. 1학년 때 저희들 손으로 모아두었던 그 씨앗들인 걸 눈치챌 테니까요. 그 꽃들이 이 세상을 환하게 밝혀준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모두가 흐뭇한 미소를 지을 것입니다. 그때쯤 우리 3반의 추억도 어렴풋이나마 떠올릴 수 있다면 저는 더 바랄 것이 없답니다.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소중하고 똑똑한 재목입니다. 지금처럼 남과 어울리는 법을 중히 여기면서 씩씩하게 자란다면 두가 우리나라의 큰 기둥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말하고 싶어도 묵묵하게 참아내고, 불만이 있어도 표출하지 않고, 바라는 것이 많아도 내색하지 않고, 무조건 좋은 마음으로 협조해 주신 우리 반 학부모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가정에 두루 복 많이 받으시기를 바라면서 이만 글을 맺겠습니다.


               2019학년도를 보내며     

                          1학년 3반 담임   * * *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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