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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여인 Aug 03. 2023

“얘들아, 보고 싶었단다.”

개학이 늦어진 초유의 사태

코로나19로 아직 학교 문턱을 밟아보지도 못한 

초등학교 1학년 나의 학급 아이들한테 보냅니다.  

   



여느 날처럼 똑같은 시각에 학교에 출근하였습니다.

학교 교문 앞에서 보았습니다.

번쩍번쩍 윤기 나던 교표가 뿌연 먼지를 뒤집어쓴 채 맥을 못 추는 걸.

갑자기 울컥하는 감정이 새어 나옵니다.

방학이 끝난 지는 오래되었는데도 개학을 못 하니, 주인 없는 학교가 휑하기만 합니다.

아이들이 없는 학교는 바짝 시들어 생기를 잃은 꽃나무와 같아 보입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여전히 낯선 풍경이 기다리고 있네요.

평소 같았으면 들썩들썩할 복도도, 시끌시끌해야 할 교실도 모두 풀이 죽었습니다. 

신발장에 빼곡히 앉아 있어야 할 실내화도 한 켤레 보이지 않고 썰렁하기만 합니다.

드르륵 교실 문을 열었습니다.

반듯하게 줄을 맞춘 24개의 책상이 화들짝 놀랍니다.

얼마 전, 2020년도 신입생들을 위해 새 책상과 걸상을 들여놓았습니다.

올해 신입생들은 어떤 아이들일까? 책상과 의자의 먼지를 닦으면서 상상했지만 여전히 아이들 얼굴은 볼 수가 없습니다.     

 



때마침 햇살 한 줄기가 교실 안을 빠꼼히 들여다봅니다.

반가움에 나도 모르게 손짓을 했습니다.

“어서 들어오렴.”

창문 넘어 들어온 햇살은 머뭇거림 없이 아이들의 책상과 의자 위에 걸터앉습니다.

매일 공부하는 아이들의 모습이나 놀이하는 모습까지 비쳐주던 정겨운 햇살입니다.

“너도 기다림에 많이 지쳤지? 나처럼.”

턱을 고이고 앉아 햇살과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햇살이 말합니다.

“해맑은 아이들이 저 문으로 성큼 들어서는 걸 빨리 보고 싶어.”

코로나19가 사라져서 빨리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네요. 

“왜 아니겠니? 나도 그렇단다.”

나는 햇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리 쿵, 저리 쿵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나도 빨리 만나고 싶어.”

말 안 들어도 좋고, 고집을 부리며 징징 울어도 좋으니 제발 만나고 싶다고요.

햇살이 정말이냐면서 마구 웃었습니다.

“아무렴. 정말이지 않고.”     


이제 세상을 보는 눈이 크게 바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함께할 수 있고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 알 것 같다고요.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며 하찮게 여겼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지 우리는 미처 몰랐잖아요.

매일 반복되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는 겪어봐서 알잖아요.

방학하면 자연스레 개학하는 날이 오고, 배고프면 마음대로 식당 가고, 황사에 사용할 마스크도 아무 때나 살 수 있던 당연한 시절을 고맙다고 생각한 적은 거의 없었지요.

생각해 보면 너무나 소중하고 너무가 고마운 일들이었어요. 

만나고 싶은 사람은 당장 만날 수 있고, 서로 포옹하고 악수할 수 있으니까 아쉬울 게 없었어요.


하지만 앞으로는 아주 조그만 일이라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소중하게 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눈으로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로 인해 위협받고 있는 지금, 우리의 생각이나 생활습관은 많이 달라질 게 뻔하죠.


진지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햇살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게 바이러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건강과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요.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이겨내지 못하고 지구촌 곳곳에서 아깝게 숨진 사람들을 보면서 생명의 소중함도 다시 한번 느껴 보았다고요.  

   

햇살은 내게 물었습니다.

아이들을 만나면 제일 먼저 무슨 말을 할 거냐고.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힘들었지?라고 말할까?”

햇살은 더 좋은 말을 찾아보라 권유합니다.

“그럼 바이러스를 이겨내어 고맙다고 말할까?” 

그리고는 줄줄이 내 생각을 말했습니다.

건강하고 해맑은 모습을 보여 주어 장하다고?

정말 대견하고 기특하다고?

내 말을 모두 찬찬히 듣고 있던 햇살은 조심스레 말했습니다.

“보고 싶었다고 말해봐.”

“아, 정말 좋은 말이네.”


출석부를 보고 내 아인 줄 알고는 있지만 4월이 다 되도록 만나지 못 한 아이를 처음 만나는 순간, 제일 먼저 튀어나올 말은 오직 하나. 보고 싶었다는 말이겠지요.     

햇살은 한 마디 덧붙여 나를 다독여줍니다.

“하지만 어쩌면 마스크로 반쯤 가린 얼굴만 보여주게 될지도 몰라.”

그래도 좋아요. 그렇게 생활하다 보면 언젠가 백신도 개발되고, 치료약도 개발되겠지요.

그런 일은 똑똑한 제약회사 연구진들이 알아서 할 일이니까요.

나는 우선 내 아이들을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뿐이랍니다.     


우리 교실에 들어올 아이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정말 궁금해요.

아직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 한 우리 아이들이잖아요.

2월 중순, 번호와 이름을 알게 된 날부터 줄곧 만나고 싶었던 아이들입니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할까? 너무나 궁금해요.      

햇살의 조언대로 해볼 작정이에요. 

아이들을 처음 만나는 날, 이렇게 첫 말을 건네보렵니다.

“얘들아, 보고 싶었단다.”

마음속으로는 또 이렇게 외치고 싶어요.

학교로 오기까지 참으로 고생이 많았지?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내게 와주어 고마워. 

이제 우리 앞으로는 걱정 없이 잘 지내보자.     


한 아이 한 아이 모두 힘껏 안아주고도 싶지만 당분간은 참으려고 합니다. 

그토록 기다려왔던 벅찬 만남이지만 아직은 자제해야 될 것 같으니까요.

‘마음은 가까이해도 몸은 멀리 하라’는 지침이 우리들 곁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닐 테니까요.    

 

햇살은 이제 다른 교실도 둘러봐야 한다며 떠날 차비를 차립니다.

그리고는 어느새 창문을 넘어 훌쩍 떠나갔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오는 날, 꼭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긴 채.     


초등학교 첫 담임선생님이 우리가 만날 4월 6일을 손꼽아 기다리며 마음을 전합니다.      

                             2020년 3월 27일 금요일 밤   너희들의 첫 담임선생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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