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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여인 Sep 26. 2023

너는 좋겠다

(엄마의 시 1)

   


너는 좋겠다


네가 살던 곳에서

오순도순

식구끼리 살지

외롭게 왜 혼자 나왔니


너는 좋겠다

늙지 않아서

너는 좋겠다

평생 살아서. 




매일 눈만 뜨면 걱정이던 엄마한테도 잠시의 휴식이 필요했다. 요양원 침대에서 천장만 바라보며 멍하니 누워있는 아버지와 어찌 고통을 공평하게 나눠가질 수 있으랴. 병원에 있는 아버지도 어쩌면 엄마의 휴식을 절실하게 바라고 있을지 모른다. 아버지만 애타게 바라보고 있는 우울한 분위기에서 잠시 탈피하라고. 얼른 바람 한번 쐬러 다녀오라며 손을 흔들어 주실 것만 같다.


우리 자매는 오래간만에 엄마를 모시고 나들이 가기로 했다. 경기도 쪽으로 행선지를 잡고, 유명한 음식점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어디를 가서도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걱정으로 끝을 냈다. 차를 마시기 위해 일부러 인터넷 검색까지 하며 찾아 간 카페는 유명한 곳으로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과연 입소문대로 수풀이 우거진 자연 그대로의 조경을 배경으로 한 장소라서 볼거리가 많았다. 천천히 실내를 한 바퀴 돌며 구경을 하는 데만 시간이 많이 걸릴 정도로 규모가 컸다. 천장을 뚫을 듯 높이 서 있는 나무와 잔잔한 풀꽃들이 조화를 이룬 실내는 자연 속에 들어와 있는 듯 신선했다. 역시 입소문을 따라 먼 길을 달려온 보람이 있을 정도로 만족도가 높았다.


화단 가운데에 우거진 수풀 속에 도자기로 만들어진 호랑이 상 한 마리가 서 있었다. 왠지 카페의 분위기와는 사뭇 맞지 않는 호랑이였다. 식물도 그렇지만 동물이라면 특히 쌍으로 두는 게 상식적일 텐데. 한 마리의 호랑이로는 균형감각이 맞지않는 듯 보였다. 남의 카페에 이래라저래라 간섭할 처지는 아니라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버렸다.


연못 쪽으로 돌아가려고 뒤를 돌아보니 엄마는 호랑이 상 앞에서 걸음을 딱 멈추고 서 있었다. 떠날 생각도 하지 않고 호랑이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게 아닌가. 다시 뒷걸음질로 엄마한테로 갔다. 엄마 눈에 그렁그렁 고인 눈물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


'아차! 호랑이가 혼자되었구나.'

빠르게 뇌리를 스쳤다. 엄마는 가족 품을 떠나 혼자 서 있는 호랑이와 집을 떠나 요양병원에 누워계신 아버지를 떠올린 것이다. 어느새 엄마는 혼잣말로 시를 중얼거렸다. 1절은 아버지를 생각하며 '왜 혼자냐?'라고 묻는 마음이다. 2절은 생로병사에 힘들어하지 않아도 되는, 죽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동상 부러워하는 마음이 잘 나타난다. 영원히 살 수 있는 동상처럼  

  

남몰래 시 공부를 하셨나? 운율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솜씨가 시를 많이 지어본 듯하다. 학교만 안 다니셨지, 역시 머리로 따지자면 학교 다닌 사람보다 훨씬 생각이 깊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나는 제목을 무얼로 해드릴까 고민하다가 '너는 좋겠다'라는 제목을 붙여보았다. 엄마가 읊은 시에 제목을 붙이고 감정을 넣어서 다시 읽어드리니 엄마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웃는다.


"엄마, 완전 시네."

"시는 무슨? 그저 생각대로 나온 건데 그까짓 게 시가 되냐?"

엄마의 입에서 나오는 건 죄다 시가 될 수 있으니 부디 천천히 읊으시라고 당부를 드렸다. 천천히 읊어야 내가 받아 적을 수 있다고 할 때, 눈을 살짝 흘겼지만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차와 빵을 주문했다. 페스츄리빵이 나왔을 때 우리는 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도 이 빵을 좋아하셨는데."

지난번 면회를 갔을 때 그가 손 칠판에 남긴 글자가 불현듯 떠올랐다.

'빵 좀 다오. 먹고 싶다.'

콧줄을 떼어버리고 입으로 먹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할까. 아무도 상상할 수 없다. 기관지 삽관으로 인해 오랫동안 콧줄로 묽은 죽만 취하던 아버지가 간절하게 원하는 빵. 그 빵을 앞에 놓고 우리는 모두 목이 메었다. 엄마는 금방 울상이 되었다.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아버지한테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랐다. 얼른 툭툭 털고 일어나 요양병원에서 걸어 나오기를 빌고 또 빌었다. 원하시는 빵을 마음껏 드실 수 있는 날이 과연 올까 하는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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