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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여인 Dec 05. 2023

인생 최고의 선물

비나이다! 비나이다!

   어렸을 적에는 생일날이 일 년 중 최고의 날이었다. 생일 즈음부터 찾아오는 두근거림은 공연히 잠까지 설치게 할 정도였다. 특별한 것을 기다리거나 부모님께 선물을 바란 것도 아닌데 왠지 모를 설렘이 가슴을 건드렸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어느 해 생일 풍경이 눈에 선하다.


부엌에서 풍겨오는 맛있는 냄새로 일찍 눈이 떠졌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이윽고 드르륵 방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평소와는 달리 사뭇 위엄까지 갖춘 밥상이 내 눈앞으로 떡하니 들어왔다. 전날까지만 해도 밥그릇을 까맣게 점령했던 보리밥이 자취 없이 사라지다니. 대신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눈처럼 하얀 쌀밥이 밥그릇 위로 소복했다. 엄마는 미역국을 푸짐하게 한 대접 퍼서 덕담 한마디 살짝 얹어 내게 건넸다.

“생일에 잘 먹어야 평생 굶지 않는 법이여.”


새벽부터 일어나 상차림 하느라 손에 물 마를 새 없던 엄마는 내 표정을 보며 흐뭇해했다. 그릇 바깥까지 봉긋하게 올라온 밥을 한 숟가락 푹 떠서 입안에 넣었다. 미처 씹지도 않았는데 사르르 녹는 게 눈이 아니고 무엇이랴. 입안에서 향연이 일어난 듯 단맛이 돌았다.


세상에 태어난 것을 고마워하듯 밥상 위에 모인 온갖 반찬들이 축하해 주었다. 내 젓가락은 밥상 위에서 잠시 길을 잃고 방황했지만 당당할 수 있었다. 선택의 여지도 없이 곧장 김치 그릇으로만 향했던 어제의 풀 죽은 젓가락질이 아니었다. 참기름 내를 풍기는 김이 번들거리는 윤기로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이미 내 눈은 고추장에 버무린 고기볶음에 꽂혀 절로 입맛을 다시고 있는데. 아버지는 당신 앞에 놓인 생선구이를 발라서 자꾸만 내 숟가락 위에 올려놨다. 뜨끈한 미역국 한 사발을 후루룩 먹고 나면 주인공으로 대접받는 아침이 왠지 쑥스러워 얼굴이 붉어졌다.


상을 물리고 나면 아버지는 빳빳한 십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선물로 주었다. 나는 돈이 구겨질까 봐 얼른 앨범 안에 끼워두었다. 추억으로 꽁꽁 가둬두고 이따금 들여다보겠다는 야무진 생각이었다. 아주 드문 일이었지만 예쁜 운동화를 선물로 받기도 했다. 알록달록한 게 너무 앙증맞아 땅바닥에 내려놓기가 아까울 정도였다. 마음 같아서는 고무신은 냅다 집어던지고 얼른 바꿔 신고 싶었지만 때가 탈까 봐 가슴에 품기만 했다.


수수팥떡은 생일마다 빠지지 않고 상 위로 등장했다. 수숫가루를 반죽해 새알심을 빚고 끓는 물에 삶아낸 후 붉은 팥고물을 묻혀 만든 떡이다. 엄마는 수수와 팥의 붉은색이 잡귀를 물리치고 액을 방지해 준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는 분이었다. 아이가 열 살이 될 때까지 이 떡을 해주어야 무병장수를 한다고 매번 강조했다. ‘살 풀어지게 해 달라.’는 주문을 잊지 않았는데 잡귀를 물리쳐달라는 뜻이라 했다. 미신의 성격이 짙지만 의학이 발달하지 않던 시대부터 내려온 우리네 부모의 간절함이 담긴 의식이다.


엄마는 생일마다 자식들 머리맡에 두었던 떡그릇을 들고 동트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자식 앞날에 어떠한 장애물도 생기지 않게 해달라고 천지신명께 빌었다. 우리 자식들 언제나 꽃길만 걷게 해 달라며 두 손 모아 빌었을 것이다. 당신이 평생 걸어왔던 굵은 자갈밭은 절대 걷지 않게 해 달라는 말과 함께.


빳빳한 지폐나 알록달록한 운동화보다 최고의 선물은 수수팥떡이 아니었을까. 하루하루 고달픔 속에서도 어떻게 다섯이나 되는 자식 생일을 한 번도 잊지 않을 수 있었을까. 열 살이 될 때까지 한 번도 거른 적 없는 그 신앙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라 믿는다.


직장 다니는 나를 위해 아이를 키워주면서도 엄마는 손자의 생일까지 꼬박꼬박 챙겼다. 생일 전날 밤에 떡을 담아 잠자는 아이의 머리맡에 두라고 일렀다.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를 바라며 잠든 아이 머리맡에다 떡을 놓았다. 어슴푸레 동이 틀 때면 엄마가 당부한 대로 높은 곳으로 올라가 주문을 외웠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서울에 사는 기사생(己巳生), 우리 아들. 부디 살 풀어지게 하옵소서.”


여기저기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손자의 생일까지 챙겨준 그 은혜를 어찌 다 헤아릴까. 늘 받기만 해 왔던 사랑을 어떻게든 돌려 드리는 게 도리이다. 돌아오는 엄마 생신날에는 내 손으로 수수팥떡을 만들어 드리면 어떨까. 엄마의 끊임없는 희생과 인내가 우리를 지켜왔듯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지켜드려야 할 때다. 


엄마 머리맡에 떡 그릇을 놓고 우두커니 앉아 주름진 이마를 안쓰럽게 내려다보게 되리라. 새벽녘, 언덕으로 올라가 동서남북 방향으로 떡을 힘껏 던지며 빌게 되리라.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으니 혹시 엄마한테 도사린 육신의 고통을 모두 거둬갈지도 모르기 때문에.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서울에 사는 을해생(乙亥生) 우리 엄마, 부디 살 풀어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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