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헌제의 이야기

by 윤문

나의 이름은 유협. 자는 백화이며 조위의 산양공이자 한나라의 마지막 황제이다. "헌제" 라고 하면 더 잘 알 것이다. 어린 나이에 즉위해 <삼국지연의> 내내 단역처럼 용포를 입고 앉아 있는 바로 그 사람이 나다. 나는 항상 인간 명분 그 자체였다. 내 삶을 돌이켜보면 참 음울하기 짝이 없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한번 풀어보겠다.


나는 영제의 후궁 왕미인의 아들이라고 한다.


나에게는 우리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없다. 우리 어머니는 내가 태어나자마자 나 때문에 죽었다고 한다. 내가 태어났고, 내가 남자라서, 그걸 시기한 하태후가 독살했다고 들었다.


내가 여자였다면 우리 어머니는 살아 있었을까?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우리 어머니라는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를 낳고 싶어했을까? 그 사람은 죽을 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에게 십상시의 난 당일에 이복 형인 소제와 도망치던 기억이 있다. 나는 어렸지만 소제가 죽고 나만 살게 되면 내 목숨이 온전치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고 그러기에 소제를 모시고, 아니 사실상 끌고 그냥 뛰었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잡히면 죽는다는 것을.


그 뒤의 기억은 약간 끊겨 있다.


눈을 떠 보니 짚 더미에서 소제와 자고 있었다. 나는 소제를 좋아한 적이 없었지만 항상 동정했다. 그때는 내 팔자가 더 기구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마냥 소제를 동정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소제 부럽다. 여하튼 이때에도 한나라의 황제가 짚 더미에서 덜덜 떨고 있다는 데 동정심을 느껴서 내 겉옷을 벗어서 덮어 주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나와서 우리를 데려가고…


그 뒤로는 기억이 없다. 주변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내가 동탁 앞에서 조리 있게 말을 했고, 그걸 본 동탁이 내가 총명하고 황제의 자질이라는 명분으로 소제를 죽이고 당시 열 살이었던 나를 옹립했다.


동탁이 권력을 잡았던 날들은 끔찍했다. 날마다 연회가 있었고, 연회마다 “즐길거리” 가 있었다. 관원의 목 베기, 포로의 눈과 혀 뽑기, 죄인의 손가락 자르기, 아무 노비나 불러다가 때려죽이기, 지나가는 행인 잡아서 가마솥에 산 채로 끓이기…


한번은 나를 협박하기도 했다. 나를 죽이겠다고 여포를 데려와 칼을 들고 협박을 하는 통에 무릎을 꿇고 울면서 빌어야 했다. 그 후의 기억은 필름이 끊긴 듯 전무하다. 아마 정신을 잃었을 것이다.


그동안 나에게 힘이 되어준 한 궁녀가 있었다.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보다 세 살 어렸던 그 순진한 아이는 정말 착했다. 매일 밤 잠을 설치며 우는 내가 불쌍했는지 나에게 매번 달달한 것을 가져다 주며 응원해 주었다. 이것도 지나갈 거라고, 버티라고. 힘들면 울어도 된다고. 그 아이와 관련된 기억 중에 끔찍한 것이 있다. 동탁이 이 사실을 알게 되자 그 순진한 그 일곱 살 짜리가 나에게 꼬리를 친다며 끌고 갔다. 그 후 그 아이의 끔찍한 외마디 비명이 들렸고, 나는 그 이후로는 그 아이를 보지 못했다.


그 아이를 살려 달라며 우는 나를 보며 동탁은 큰 소리로 웃고는 인사도 없이 궁을 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동탁이 그녀를 죽인 이유는 간단했다.


나의 공포와 절망감을 보기 위해서이다.


그 후로 가끔 그 아이의 귀신이 나오는 꿈을 꾸었다. 왜 죽였냐고, 살려 달라고 했다.


물론 악몽은 조금 지나자 사라졌고, 드문드문 들리던 그 아이에 대한 뜬소문은 끊겼다. 그 아이는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를 아직 기억한다.


그 아이는 나 때문에 죽은 첫 번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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