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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이 감자인 나라

 한 번은 홈스테이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홈스테이 주인아저씨께서 한국을 주로 뭘 먹냐는 질문에 쌀!이라고 말씀드렸다. 쌀과 김치, 다른 반찬과 국을 말했다. 반찬과 국은 정확히 일치하는 영어단어가 없어서 구구절절 설명했었다. 반찬은 side menu로 국은 stew 또는 soup인데, 더 watery 하다고 말했다. 그래도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보이셔서 고등학교 점심을 보여드렸다. 점심은 알겠고, 아침과 저녁은 뭘 먹냐길래, 항상 그렇게 먹는다고 했다. 되게 신기해하셨다. 그러면서, "쌀을 싫어하는 사람은 뭘 먹어?" 물어보셨다. 김치를 싫어하는 한국인은 만나봤지만 쌀을 싫어하는 한국인은 못 만나봤으므로, "쌀을 싫어하는 한국인은 없다. 그런데 만약 있다면 국수나 빵을 먹지 않을까?"라고 답변했다. 이때 나는 오히려 답문 하고 싶었다. 감자를 싫어하는 아일랜드 사람은 뭘 먹는지...

 

 아일랜드 주식은 감자이다. 어제는 홈스테이 주인아주머니가 마트에서 장을 보고 오셨다. 감자 한 박스를 사 오시고 몇 개씩 소분해서 뒷마당 서늘한 창고에 넣어두셨다. 그 모습이 딱 쌀 한 포대 사서 큰 통에 소분해 놓는 우리나라와 같았다. 역시 주식은 주식인가 보다. 아일랜드는 매 끼니 감자가 나온다. 알감자, 완전 으깬 감자, 양념된 감자, 튀긴 감자, 감자 샐러드, 통감자 찜, 버터구이 감자 등등등... 내 눈엔 매일 똑같은 감자이지만 모두 다른 음식이다. 아일랜드에서의 저녁식사 모음 영상 보러 가기


 그런데 감자가 주식이 된 배경에는 슬픈 역사가 있다. 이 아일랜드는 오래전에, 아주 오랫동안 영국의 식민지였다. 학자들마다 주장하는 식민지 기간이 조금씩 다르지만 약 750년 동안 영국으로부터 지배를 받았다. 1차 세계대전 때 해방이 되었다. 일본이 우리나라의 토지를 빼앗고 곡물을 모두 수출하고 빼앗았던 것처럼 영국 역시 아일랜드의 곡물들을 모두 수출하고 빼앗았다. 그런데 감자는 그 옛날에 악마의 식물이라고 불리며 천대받았던 작물이어서 영국인에게 빼앗기지 않았고 그렇게 아일랜드인의 주식이 된 것이다.


 그런데, 감자 전염병인 '감자 씨 마름병'이 돌게 된다. 이 전염병으로 인해서 감자가 모두 죽게 되어 아일랜드인이 먹을 것이 사라졌다. 아일랜드인이 먹을 것이 없어져 아사자가 증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영국은 아일랜드에서 재배되는 다른 곡물들을 어김없이 수출하고 있었다. 아일랜드인들은 점점 더 굶어가고, 굶어가니 면역력이 약해지면서 작은 전염병에도 사람들이 죽어갔다고 한다. 그렇게 그 당시 800만 명이었던 아일랜드인 중 100만 명이 굶주림과 전염병으로 죽어갔다. 이 사건을 아일랜드 대기근이라고 부른다.


 이때를 기억하기 위한 동상들이 더블린 곳곳에 있다. 첫 번째는 몰리 말론 동상 (Molly Malone Statue)이다. 여자가 가슴이 많이 파진 드레스를 입고 물고기가 실린 카트를 끌고 있는 동상이다. 이 여자에 대해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여자인데, 일자리도 없고 먹을 것도 없었다. 그래서 항구 근처에서 가슴이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고 영국군과 잠자리를 가진 후 그 대가로 물고기를 얻었다고 한다. 아이에게 먹일 음식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영국군에게 희생한 안타까움이 담긴 이야기이다. 이 동상이 관광 명소로 유명해서 사람들이 와서 사진을 찍는데, 이 동상의 가슴을 만지면 복이 온다는 미신이 있나 보다. 사람들이 가슴에 손을 얹은 채로 사진을 하도 많이 찍어서 그 부분만 반질반질하다. 몰리 말론 동상에 관한 이야기가 실화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비록 동상일지라도 자신의 몸을 어쩔 수 없이 내어준 안타까운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여전히 다른 사람이 만지고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그리 썩 유쾌하진 않다. 또 다른 하나는 대기근 참상 동상(World Poverty Stone)이다. 피골이 상접한 사람이 힘없이 서있는 동상이다. 죽어가는 자식을 들쳐업고 서 있는 동상도 있다. 개마저 갈비뼈가 다 드러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동상을 통해 그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참혹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더블린 동상 보러 가기

(좌) 몰리 말론 동상 (우) 대기근 참상 동상

 우리나라도 못 먹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밥"에 대한 온정이 오고 가듯이 아일랜드도 비슷하다. 대부분의 유럽이 물가가 비싸듯이 아일랜드 역시 외식 한번 하면 깜짝깜짝 놀란다. 기본 20유로 정도 되는데, 약 3만 원 정도이다. 딱 내 메뉴 하나만 주문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양이 많다. 다 먹고 나면 아주 든든하다. 혹시 주문한 메뉴가 감자튀김이라면 거침없이 담아준다. 아낌없이 담아준다. 홈스테이 아주머니도 저녁을 해주시는데 매번 푸짐하게 주신다. 한국에서는 감자보다 고구마가 더 맛있어서 감자는 자주 안 먹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몇 달째 감자만 먹고 있는데 참 맛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꽤나 그리울 것 같아서 돌아가기 전에 서점에서 감자 요리책을 사려고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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