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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가 조금씩 늘고 있어요

 외국에 살기만 하면 어쨌든 언어는 늘어!라고 하는 말을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영어를 배우고 써야 늘지 살기만 한다고 는다? 그러면 해외여행을 많이 가면 유창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반문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루에 4시간씩 어학원을 다니지만 그뿐이었기에 크게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처음에는 홈스테이 주인아주머니가 하시는 말도 정확히 알아듣지 못했다. 저녁을 거의 다 먹을 때쯤에 아주머니께서 Did you have enough to eat?(충분히 먹었어?)라고 물어보신다. 그런데 처음엔 저 마지막 "to eat?"을 듣지 못했다. 내 귀엔 저 말이 트윅스로 들렸다. 초콜릿 브랜드 트윅스 말이다. 무슨 말인지 정확히 듣지 못했어도 문맥상 초콜릿이 아니고 잘 먹었냐는 소리인 줄 알았기에 yes!라고 답할 뿐이었다. 저 말이 정확히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것은 한 달이 지난 후쯤이었다. 학원에서도 선생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서 나 혼자 다른 것을 하고 있을 때도 많았다. 정말 부끄럽지만 어쩌겠는가. 카페에서 주문을 할 때에도 내가 먹고 싶은 메뉴만 주문할 줄 알고 뒤에 직원이 하는 말은 못 알아듣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기가 팍팍 죽지만 '배곯지 않으니 그것으로 되었다'하며 나름 정신승리 한다.


 더블린 생활이 한 달이 지나갈 때쯤에도 전혀 언어에 진전이 보이지 않아서 영어회화 인터넷 강의를 신청했다. 사실 그전에 고민이 많았다. 더블린에서 돈 들여 영어 수업을 듣고 있는데도 이 강의를 또 신청하는 것이 맞는 걸까?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하는 생각으로 눈 딱 감고 결제했다. 그리고 영어 귀를 뚫기 위해 디즈니 영화를 저녁에 시청하기 시작했다. (물론 매일 공부한 것은 아니다.) 더블린에서 만난 언니는 영어가 들리려면 어쨌든 3달은 지나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과연... 그런데 놀랍게도 3달이 지난 지금 조금씩 들리는 것 같다. 듣고 이해가 되는 순간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학생 때 외웠던 영어단어가 도움이 되고 있다. 많이 잊어버린 것이 사실인데 저 기억 어딘가 존재했었나 보다. 기억 저편 어디에서 단어를 꺼내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한 번은 선생님의 물음에 대답을 했는데, 거꾸로 "그 단어가 무슨 뜻이었지? 무슨 뜻인데 내가 사용한 거지?"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 단어는 knowledge 지식이었다.) 조금씩 내 뇌가 영어를 받아들이고 내뱉는 연습을 하고 있나 보다. 또 신기한 경험은 영어로 꿈을 꾸는 것이다. 정확히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영어였다.


 그래도 여전히 영어로 말을 하는 것은 어렵다. 대부분 다 어려운데, 시제에 맞게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말은 빨리하고 싶은데 자꾸만 시제가 틀리게 말이 나온다. 또 그녀, 그 she, he를 바꿔서 이야기할 때가 많다. 한국말도 대화할 땐 그녀가~ 또는 그가~라고 말하지 않으니 자꾸 실수가 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상대의 성별을 바꾸게 된다. 또 의문문 형태를 잘 만들지 못한다. 영어에서 의문문을 만들려면 주어와 동사의 위치를 바꾸는 등의 의문문 형태를 만들어야 하는데, 맘이 급할 때는 평서문에 말 뒷꼬리만 올린다. 다행히 알아듣고 대답해 주신다.


 언어는 듣기를 먼저 하고 말하기를 하는 것이 순서이다. 신생아들을 보면 그 순서를 알 수 있다. 듣기 연습을 계속하면서 말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언제가 원하는 말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부디 더블린을 떠나기 전에 말을 조금 더 유창하게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빨리 말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그냥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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