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일하다가 직업에 대한 회의감을 느껴 잠시 쉬기로 결정하고 아일랜드로 왔다. 떠나올 당시 나는 내 나이가 적지 않다고 생각했다. 보통 어학연수는 대학생 때 많이 나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블린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나이의 적고 많음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냥 다를 뿐이라는 걸 느끼곤 한다.
아일랜드에는 한국인 비율이 적지만 그래도 한국인이 있고, 외국인보다 한국인 친구를 사귀는 것이 쉽다. 당연하다. 한국인은 학원에서 만난 친구, 한인 교회에서 만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출신을 들어보면 모두 다 다르다. 그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가 얼마나 작은 사회에 있었는지 느낄 수 있다.
더블린에 도착하자마자 만난 한국인은 어학원 같은 반 언니이다. 이 언니는 한국에서 디자이너로 일을 하셨고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아일랜드 남자친구를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외국에서 살아 보고 싶다고 생각한 후로 어느 나라로 갈지 고민하다가 남자친구가 있는 아일랜드로 가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에 정착하고 싶어 하신다. 비자 만료일이 가까워지고 있는 요즘 정착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아 스트레스를 받고 계신다.
또 다른 분은 아일랜드에서 사신지 6년째라고 하신다. 한국에서의 일이 너무 힘들어 아일랜드로 도피하듯 오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어학연수로 왔고 8개월이 짧게 느껴져서 다음 해에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다시 왔다고 한다. 그러다가 일을 하던 곳에서 워킹 비자를 내주었고 그렇게 장기간 거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올해 비자가 만료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갈지 아일랜드에 남을지 고민하다가 아일랜드에 조금 더 있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한인 교회에는 이 아일랜드 땅에 정착해서 결혼도 하시고 자녀까지 기르시는 분도 뵐 수 있다. 그분께서 말씀하시길 처음에는 어학원을 다니며 아르바이트만 하다가 회사에서 잡 오퍼를 받았다고 한다. 그때 아일랜드의 회사 생활과 문화는 어떨지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고, 한국은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잡 오퍼를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새로운 기회를 매번 잡게 되면서 한국을 떠나온 지 20년이 넘었고 당신의 자녀들은 모국어가 영어가 되었다고 한다.
한국을 떠나오기 전에 아일랜드에 가겠다고 친구한테 말했더니 친구가 "그렇게 한 번 한국 떠난 사람은 다시 잘 안 돌아오더라."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당시에는 묘하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냐하면 영원한 작별인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외국에 정착할 생각이 전혀 없다. 한국이 좋다. 한국말을 쓴다는 것도 좋고 한식을 제일로 좋아하고 편의 시설도 가까이 있고 깨끗하며 안전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아일랜드는 모국어가 아닌 영어를 사용해야 하며 제대로 된 한식은 사 먹을 수 없으며 -만들어 먹을 수 있지만 시래기, 우거지 같은 것은 재료조차 구할 수 없다.- 편의 시설은 시티센터에 있고 -없는 물건이 더 많다.- 길거리는 더러우며 안전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블린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아일랜드에 정착하길 원한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감히 짐작하건대, 한국의 단점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 있다. 첫 번째로는 한국의 직장 문화이다. 한국인 누구나 워라밸을 추구하지만 워라밸을 누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무엇보다 워라밸을 지켜주는 회사도 많이 없다. 또한 본질 이외의 일을 하는 것 같을 때도 있다고 했다. 두 번째로 한국은 지나치게 관계 중심적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말하는 '지나치게'는 분명 자신과 친한 관계가 아닌 적당한 관계, 이를 테면 (친하지 않은) 대학 동기라든가 (친하지 않은) 직장 동료 등 이러한 관계들이 얽혀 있고 그들의 입에도 자신의 이야기가 오르락내리락거린다는 것이다. 또한 나름 이것도 인맥 관리라고 하며 잊을만하면 만남을 가지는 것이 매우 피곤하다고 말한다.
나는 아일랜드에서 생활한 지 5개월 밖에 되지 않아 아일랜드의 직장문화나 인간관계를 대하는 태도 등을 이렇다 저렇다 말할 자격이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느끼는 점이 있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아일랜드에 가기로 결정했다고 지인들에게 말했을 때 모두들 "왜?"라며 이유를 물어보셨다. 그럼 나는 항상 "이유는 없어요. 잠시 쉬고 싶어서요."라고 말하면 다시 "왜?"라고 답변이 돌아왔다. 이 이후는 불편한 대화들 뿐이다.
아일랜드에 와서도 이 질문을 똑같이 받았다. 홈스테이 주인, 어학원 선생님, 어학원 친구들, 공원에서 만난 사람들 등등 나에게 "왜 왔어?"라고 물어본다. 답변은 변함이 없다. "이유는 없어요. 잠시 쉬고 싶어서 왔어요."라고 이야기하면 "가장 좋은 이유네."라고 말해준다. 거짓말 안 하고 모두가 이렇게 말했다. 이곳에 와서 느낀 점은 이곳의 사람들은 타인이 결정한 타인의 선택에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런 작은 차이가 한국보다 아일랜드가 편안하다고 느낀 것이 아닐까? 나도 이제 비자가 만료되어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처음에는 말이 한마디도 통하지 않고 초기 정착의 어려움으로 한국으로 돌아가네 마네 했지만 오히려 지금은 아쉽게만 느껴진다. 또 아직도 아일랜드에서 쉬기만 하는 이 기간이 돈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만 같아 과연 이 생활이 나에게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줄까 의심할 때도 있다. 부디 남은 기간 알차게 보내기를 바라고 위에서 말한 아일랜드의 좋은 성품을 나에게 담아 한국으로 귀국할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