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교사로 선택한 것은 나에게 자연스러웠다. 나는 고등학생 때 공부를 아주 잘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오히려 친구들에게 잘 알려줄 수 있었다. 친구들이 언제나 고마워했고 꼭 교사가 되라고 말해주었다. 나 또한 이 분야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범대에 들어갔고 열정이 넘쳤던 나는 경험을 더 쌓고 싶어서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다.
대학생 1학년 여름 방학 때부터 한 수학 학원 조교로 일했다. 조교가 하는 일은 학원 자습시간에 학생들이 질문하는 문제를 도와주거나 풀어주는 일이다. 이 일이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수학을 매우 잘하지 않는다. 그래서 고3 고득점을 바라보는 학생들에게는 나의 실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이때 수학 공부를 다시 했던 것 같다. 종종 학원에서도 시간이 남으면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던 수학 문제집을 풀었다. 이 모습을 원장님께서 좋게 봐주셨다. 그래서 학년을 전담으로 맡게 되었다. 중3과 고1 학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곳에서도 내가 오히려 수학을 잘하지 못한 것이 장점이 되었다.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이 나도 어려웠던 부분이었기에 그 부분을 신경 써서 알려주면 되었다. 그러면 학생들이 이해했다는 표정, 이제 알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그 표정과 그때 느끼는 보람에 중독되었다.
다음은 교생 실습이다. 교생 실습은 학원 조교가 가르치는 것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문제를 푸는 게 아닌 문제에 적용될 이론을 설명해야 한다. 또한 학원 조교는 1대 1로 소통할 수 있지만 학교는 1대 다수이다. 그래서 학생이 이해했는지의 여부를 파악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해했니? 정말 이해한 거 맞니? 정말?"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사용했다. 한 번은 한 학생이 "이 정도면 우리가 이해 못 하고 있길 바라는 거 아니에요?"라고 말해서 반 전체가 웃은 적이 있다. 교생 기간 동안에 총 8번의 수업을 했지만 부족하다고 생각이 들어서 연구 수업을 지원했다. 다행히 다른 교생 선생님들이 지원하지 않아 내가 할 수 있었다. 연구 수업은 다른 선생님들도 평가하러 오시기 때문에 철저히 준비해야 했다. 또 강의식 수업을 지양한다. 그래서 적절한 실험, 토의 수업 등을 준비했다. 또 이때 더 짜임새 있는 수업을 위해 교육과정을 많이 공부했던 것 같다. 이 개념을 언제부터 어떻게 확장하고 이 수업의 성취기준은 무엇인가 등등. 대부분은 교생 실습 기간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난 이 모든 과정이 즐거웠다.
마지막으로 과외이다. 고3 대학 진학을 앞둔 학생을 가르쳤다. 한 때 전공 교수님께서 "너희가 학교에 가면 어쩌면 지식을 가르치는 것보다 아이들 마음을 알아주는 게 더 중요할지도 몰라"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무슨 말인지는 이해했으나 전공 공부에 엄격하신 교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이 의아해서 그 말씀이 잘 와닿지 않았었다. 그런데 과외를 하면서 잘 알게 되었다. 과외를 하던 학생이 어느 날은 표정이 안 좋은 채로 왔었다. 그래서 "기분 안 좋아 보이는데 무슨 일 있어?"라고 물어봤더니 대뜸 눈물을 흘렸다. 어벙벙 놀라서 다 울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그러곤 학생이 말하길, 대학 때문에 부모님 하고 싸웠다고 했다. 그래서 대학 진학에 대한 고민, 걱정 등등 같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때 정확히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학생이 마지막엔 덕분에 기분이 나아졌다고 말해주었다.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그전에 느꼈던 감정과는 조금 다른 보람이었다. 이때를 계기로 교사가 되면 꼭 상담을 많이 하는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이 외에도 가르치는 일은 다양하게 했지만, 위 3가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가르치는 일은 삶의 원동력이었고 열정이 넘쳤었다. 지금은 그 열정이 차게 식었다. 지금 연재 중인 "길을 잃어 북극에 도착한 황제펭귄" 글에서 목차 '07. 임용고시 뛰어들기' 전까지는 열정을 갖고 크고 작은 도전들을 하며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후는 마음이 무너지는 과정과 꿈에 도달했을 때 꿈이 오히려 불투명해지는 순간을 기록했다. 다시금 열정이 생기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