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도킨스
저자는 모든 생명체를 DNA 또는 유전자에 의해 만들어진 생존 기계로 보고,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려는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그는 다양한 동물의 사례를 통해 인간 역시 유전자 전달을 위한 이기적인 존재라고 설명한다.
진화 과정에서 '기억'이 발달하면서 유전자는 미래의 위험을 '예측'하고 생존 전략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예측은 항상 정확하지 않으므로 유전자는 일종의 도박과 같다.
예를 들어, 북극곰의 유전자는 추위에 대비해 두꺼운 털을 만들고, 눈 덮인 땅에 위장하기 위해 흰색 털을 갖게 한다. 그러나 만약 북극의 기후가 급격히 변하여 아기 북극곰이 열대 사막과 같은 환경에서 태어난다면, 그 아기 북극곰은 죽고 유전자 또한 소멸할 것이다.
저자는 자기 복제자의 새로운 형태로 문화 전달 또는 모방이라는 개념을 담아 '미멤(mimeme)'이라는 새로운 명사를 만들었다. 이는 그리스어 어근에서 유래했으며, '진(gene)'과 발음이 비슷한 단음절 단어인 '밈(meme)'으로 줄여 불린다.
오늘날 SNS에서 흔히 사용되는 '밈'이라는 용어가 바로 이 책에서 비롯되었다.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핵심 개념 중 하나는 ESS, 즉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이다. ESS는 개체군 내 대부분의 구성원이 특정 전략을 채택했을 때, 다른 어떤 대체 전략도 그 전략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는 전략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ESS는 자신의 복사본에 대해 잘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이다.
개인적으로 '7장 가족계획', '8장 세대 간의 전쟁', '9장 암수의 전쟁'이 가장 재미있었다.
부모의 자녀 양육은 종족 번식에 필수적인 행위이지만, 조카를 돌보는 이타적인 행동과는 구분된다. 만약 모든 개체가 현존하는 자녀 양육에만 집중하고 번식을 멈춘다면, 번식 능력을 가진 돌연변이 개체들에 의해 그 개체군은 결국 대체될 것이다.
주변에 결혼 대신 조카 양육에 헌신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 부분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과연 조카를 키우는 행위는 유전자의 관점에서 위험한 선택일까?
이와 관련하여 책의 332페이지에서는 흥미로운 대조 사례를 제시한다. 번식 능력이 없는 일개미는 여왕개미가 낳은 자손들을 돌본다. 이들은 자신의 직접적인 자손은 아니지만 혈연관계에 있다. 따라서 일개미의 이러한 행동은 이타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한 투자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조카를 돌보는 행위 역시 궁극적으로는 '이기적인 유전자'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암컷의 폐경에 대한 가설이다.
여성이 나이를 먹음에 따라 육아의 효율성이 점점 감퇴하고, 따라서 노령의 산모가 낳은 아기의 기대 수명은 젊은 산모가 낳은 아기의 수명에 비해 짧다고 한다.
'손자에 대한 이타적 행동'은 노령의 산모가 아이를 계속 낳는 것보다 손자에게 투자하는 것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수컷의 경우 생식 능력이 갑자기 소멸하지 않고 점차 쇠퇴해 가는 이유는 자손에 대해 암컷만큼 투자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남성이 젊은 여성에게 아이를 낳게 할 수 있다면 아무리 고령이더라도 손자에게 투자하기보다는 자기 자식에게 투자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스페인의 알바레스는 뻐꾸기 탁란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양부모, 즉 까치가 침입자인 뻐꾸기 알이나 새끼를 감지하는 능력이 있는지 연구했다. 그는 뻐꾸기 알과 새끼를 까치둥지에 넣고, 비교를 위해 다른 까치둥지에는 제비 새끼를 동시에 넣었다. 놀랍게도 제비 새끼 역시 뻐꾸기 새끼와 똑같이 까치의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는 행동을 보였다.
알바레스는 이 결과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저자는 제비 새끼의 행동을 '형제 살해 유전자' 가설로 설명한다. 먼저 태어난 새끼는 나중에 부화할 동생들과 양육 자원을 두고 경쟁하게 되므로, 다른 알을 제거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극단적인 사례이며, 형제 살해보다 약한 형태의 이기성은 자연계에 훨씬 더 흔하게 나타난다.
유전자의 50퍼센트를 공유하는 부모 자식 사이에도 이해의 대립이 있는데 하물며 혈연관계가 아닌 배우자, 즉 짝 사이의 다툼은 얼마나 격렬하겠는가? 이들 간 공통 관심사라고는 같은 자식에 대해 똑같이 50퍼센트의 유전자를 투자한다는 것뿐이다. (p 279)
그랬다. 부부간의 갈등은 당연한 것이다. 40주년 기념판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지금의 나라면 조금은 부드러운 논조로 쓸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암컷의 전략은 조신형과 경솔형, 수컷의 전략은 성실형과 바람둥이형이 있다. 조신형 암컷은 수컷이 긴 시간의 힘든 구애를 하지 않으면 수컷과 교미하지 않는다. 경솔형 암컷은 누구와도 즉시 교미한다. 성실형 수컷은 장기간 구애를 하는 인내력이 있고 교미 후에도 암컷 곁에서 양육을 돕는다. 바람둥이 수컷은 암컷이 즉시 교미에 응하지 않으면 곧바로 다른 암컷을 찾아갈뿐더러, 교미가 끝나면 암컷 곁에서 좋은 아비 역할을 하지 않고, 새로운 암컷을 찾아 사라진다.
조신형 암컷과 성실형 수컷만으로 구성된 개체군은 이상적인 일부일처제 사회가 된다. 여기에 경솔형 암컷이 끼어든다. 경솔형 암컷은 긴 구애에 빠지지 않기 때문에 많은 수컷을 만날 수 있다. 개체군 내의 모든 수컷은 성실형이기에 자식을 위해서도 좋은 아비가 된다. 경쟁자인 조신형 암컷보다 경솔형 암컷의 성적이 훨씬 좋다. 따라서 경솔형 유전자는 집단 내에 퍼지기 시작한다.
경솔형 암컷이 대성공하여 개체군 내에 많아지면 수컷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바람둥이 수컷이 등장하면서 성실한 경쟁자보다 좋은 성적을 올리기 시작한다. 만일 모든 암컷이 경솔형이라면 이 바람둥이 수컷의 성적은 실로 대단해진다.
바람둥이형 수컷이 크게 성공해 개체군 내의 수컷 대다수가 되면 경솔형 암컷은 극단적인 곤경에 처할 것이다. 여기서는 조신형 암컷이 매우 유리하다. 조신형 암컷이 바람둥이형 수컷과 우연히 만나면 어떤 것도 성사되지 않는다. 암컷은 긴 구애 기간을 요구하지만 수컷은 이를 거부하고 다른 암컷을 찾아 떠날 것이다. 즉 양쪽 모두 시간 낭비는 없다. 대신 양쪽 모두 자식을 낳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이득이 없다. 바람둥이형 수컷에게 버림받은 경솔형 암컷은 새끼를 포기하기로 결정하더라도 이미 난자에 상당한 비용을 지불했다. 조신형도 비록 이득이 없지만, 크게 손해를 보는 경솔형 보다는 형편이 좋다. 따라서 조신형 유전자는 다시 집단 내에 퍼지기 시작한다.
조신형 암컷의 수가 늘면 지금까지 경솔형 암컷을 상대했던 바람둥이형 수컷은 곤경에 처한다. 암컷은 모두 장시간의 열렬한 구애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실형 수컷이 출현하면 조신형 암컷이 교미하려는 유일한 수컷이 된다. 따라서 성실형 수컷의 유전자가 증가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이 이야기는 한 사이클을 돌게 된다.
이 책은 무려 1976년에 나온 책이다. 책의 끝머리, 40주년 기념판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치가와는 달리 과학자는 자신이 틀렸다고 인정해도 된다.
(p483)
40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정이 필요한 내용이 있을 것이다. 저자는 책 속에 주석 표기를 하고 그에 관한 내용을 에필로그에 담았다.
구약성서의 그리스어 판본을 만든 학자들이 '젊은 여성'이라는 히브리어를 '처녀'라는 그리스어로 오역하여 "보라 처녀가 아들을 잉태하여..."라는 예언으로 이어졌을 때 나는 그 들이 큰일을 저지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p 70)
이 대목으로 도킨스는 많은 공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학자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는 내용이라고 한다.
컴퓨터는 아직 명인만큼 체스를 잘 두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훌륭한 아마추어 수준 정도는 된다. (p 127 )
이런 대목이 1976년 출판 책이라서 가능한 문장일 것이다. 저자는 시대에 뒤처지는 문장이었다고 쿨하게 인정한다.
'사피엔스', '총,균,쇠', '코스모스'와 함께 대표적인 벽돌책으로 꼽히는 이 책은 넷 중 가장 난해했다. 모든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내에서만 이해하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