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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사람 Mar 23. 2023

병 낫게 하는 병원비

대학병원 이비인후과 방문

9월 17일 금요일

 며칠 만에 집 밖으로 나갔다. 먹는 것마다 토하느라 화장실 변기 옆을 떠날 수 없었고, 동시에 눈앞은 더 어지럽게 흔들려서 하루종일 돌아다닌 날보다 피곤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병세가 조금씩 잦아들어서 3주 전에 예약한 대학병원 이비인후과 진료를 갈 수 있었다. 오랜만에 나온 바깥은 쾌청한 가을 날씨로 투명했다. 날씨 때문인지 명절 연휴가 시작하기 직전이어서인지, 길거리는 들뜬 설렘 같은 것이 감돌았다. 연휴 전이라 사람들도 많았다.


 대학병원은 아픈 사람들과 환자를 보살피는 사람들 그리고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로 여전히 붐볐다. 병원의 경계 안으로 들어오는 누구든, 셋 중 하나의 역할을 골라 수행하는 것 같았다. 그것도 아주 성실하게. 이비인후과는 병원 본관에서 조금 떨어진, 깨끗하게 리모델링한 건물에 있었다. 아침 첫 진료라 진료실은 붐비지 않고 쾌적했다.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와 진찰을 마친 환자가 한 곳에 뒤엉켜, 간호사 한 명이 모든 환자를 안내하느라 지쳐가던 신경외과 구역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신경외과에 비해 당장 목숨이 왔다 갔다 할 만큼 위중한 환자가 적어서 차분한 분위기 유지가 가능할 것이라 짐작했다.


 "거의 두 달 전부터 어지럼증이 있어서요. 이비인후과를 갔더니 일반적인 이석증도 아니고, 전정신경염으로 확진하기엔 증상이 조금 다르다 해서요. 안진이 있어서 여기 신경외과에도 갔는데, 중추신경 쪽 문제가 아니라 전정신경염이라 했어요. 시간이 제법 지났는데도 낫지 않고, 구토까지 있어서 이비인후과로 다시 왔습니다."

 최근까지의 증상과 병원을 다닌 이력을 군더더기 없이 간략하게 말했다.


 의사는 어떤 경우에 어지러운지, 어지러운 증세가 어떤 양상인지 자세히 물었다. 귓속을 들여다보기도 하며 대답을 곰곰이 듣더니 말했다.

 "귀 안쪽을 봐도 외관상 문제는 없고, 환자분 이야기를 들어봤을 때 전정신경염이 맞는 걸로 보이네요. 물론 검사를 해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겠지만 큰 문제는 아닌 것 같고요. 나가서 검사 일정 따로 잡으시고, 검사한 다음에 다시 진료를 보시죠."


 "검사 결과가 명확하지 않아서 큰 병원을 왔는데, 똑같은 검사를 다시 해야 하는 건가요? 계속 전정신경염이라는 진단을 받는데 혹시 다른 쪽 문제라면, 그것도 검사 결과에 나오나요?"

 처음 갔던 이비인후과에서 받은 평형기능검사를 다시 해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 물었다. 심지어 검사비는 이전보다 더 비쌌다.


 "그래도 검사를 해봐야 정확한 진단이 되니깐 평형기능검사는 해보셔야겠고. 말씀하실 때 발음이나 안면 움직임을 보면 중추신경계 문제도 아닌 걸로 보여서... 환자분이 원하시면 귀부터 머리까지 좀 넓게 MRI를 한 번 찍을 순 있죠. 다만 환자분이 원해서 하는 MRI는 보험 적용이 안 돼서 좀 비쌉니다."


 평형기능검사와 MRI까지 모두 받는 것으로 하고 진료실 바깥으로 나왔다. 진료실 옆으로 검사 일정을 조율하는 부스가 따로 있었는데, 평형기능검사는 12월 말 MRI는 10월 중순에야 가능하다고 했다. 대학병원은 환자가 많아서 검사를 받는 것도 진찰을 받는 것도 많이 기다려야 했다. 간호사는 평형기능검사 비용이 거의 40만 원, MRI는 120만 원 정도가 예상된다면서, 검사 전에 몸이 괜찮아지면 전화로 미리 검사를 취소해 달라고 덧붙였다. 일찍 어지럼증이 나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도, 정확한 원인을 모른 체 검사일까지 계속 앓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갑갑했다. 검사비는 또 오죽 비싼가. 아픈 것도 서러운데 쥐꼬리만 한 월급을 병원비로 다 탕진해야 할 판이었다.


 "엄마, 검사비 듣고 나니깐 병이 나은 것 같아요. MRI 굳이 안 찍어도 되겠어. 갑자기 몸이 멀쩡한데?"



 

 아침 첫 진료를 받은 덕에 병원을 나와도 오전이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바깥은 맑은 가을 햇빛이 더 눈부시게 비추고 있었다. 건물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모두 하늘을 한 번씩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은 아픈 사람도, 간병하는 사람도, 일하는 사람도 차별 없이 한 장면이었다. 사람이 다시 또 하루를 살아낼 힘은, 어쩌면 고운 햇빛 한 줌에서 나오는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바로 집에 들어가기 아쉬웠으므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엄마와 영화를 봤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라는 마블 영화였다. 영화 자체는 많이 기대했던 것과 달리 특별하지 않았지만 악역으로 등장한 배우 양조위의 눈빛은 여전히 특별했다. 한쪽 눈을 감고 화면을 바라볼 때 어지럼증이 덜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부터,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을 번갈아 감아가며 영화를 봤다. 어지럼증 탓에 심하게 흔들리는 스크린을 보면서도 오랜만에 느끼는 평범한 일상에 즐거웠다.

 엄마는 병원비 이야기만 듣고도 병이 바로 나은 것 같다는 내 말에 깔깔 웃었다. 나는 비싼 병원비를 헛되이 쓰기 전에 어서 낫게 해 달라고, 속으로 조용히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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