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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사람 Mar 01. 2023

납득이 안되는 일

처음 맞은 링거 주사

9월 11일 토요일

 서울에 오자마자 집 근처 내과를 찾았다. 휴가 기간 동안 길게 쉬었음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어지럼증 때문이었다. 쉬면 나을 것이라 진단받았지만, 계속 고생하면서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엄마는 몸이 빨리 낫지 않으면 병원을 몇 군데 더 가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의사도 결국 사람이어서 오진할 수 있으니 여러 곳에서 진찰을 받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신경외과도 이비인후과에서도 별 차도가 없는 데다가, 속병도 있었으니 내과를 가는 것이 나름대로 합리적인 순서였다.


 병원은 집 근처 버거킹 옆 건물에 있었다. 종종 끼니를 때우러 버거킹을 갈 때나 지하철을 타러 갈 때, 자주 지나치던 오래된 건물이었다. 건물만큼이나 오래된 병원 간판은 잘 보이지 않아서 찾기 어려웠다. 깔끔하게 인테리어 한 카페가 건물 1층에 있었는데, 카페가 눈에 띄는 만큼 나머지 건물에 시선이 가지 않기도 했다.

 '여기에 병원이 있었다니.'

 사람은 인식하고 있는 것만 인지하는지 모른다. 병원 갈 필요가 없을 때엔 병원이 바로 앞에 있는지도 모르는 것처럼. 부산에서 나고 자랐으면서도, 해운회사에 입사하고야 부산항의 화물선과 길거리에 가득한 컨테이너 박스를 뒤늦게 알아챘던 것처럼.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죠?"

 의사는 적은 머리숱 탓에 나이 들어 보이는 걸 감안해도 50대 초중반 정도였다. 오전 진료만 있는 토요일이어서인지 의사 가운이 아닌 일상복을 입고 있었는데, 튀어나온 뱃살 때문에 체크무늬 셔츠 단추가 힘겨워 보였다. 땅딸막한 체형에 얼마 남지 않은 머리숱을 광택 있는 헤어 제품으로 옆으로 넘긴 모양이, 나폴레옹이라 부르던 어느 동물농장에 살찐 주인 같았다.  

 "얼마 전부터 어지럼증이 있었는데요. 어지럼증 때문인지 지난주에는 구토도 했어요. 어지러워서 토했는지, 속이 편치 않아서 어지러운 건지 모르겠어요. 체하면 어지럼증이 생기기도 하지 않나요?"

 병원에서 아픈 증상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어려웠는데, 어느새 병세를 전달하는데 꽤나 익숙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말했다.

 "체하면 어지러울 수 있죠. 소화제랑 어지럼증 완화시키는 약을 줄게요."

 의사는 별다른 설명 없이, 질문을 답변으로 그대로 옮겨 말했다.

 "신경외과랑 이비인후과도 갔었는데 전정신경염이라서 약을 최대한 안 먹어야 빨리 회복된다고도 하던데 관계없나요?"

 왜 내가 아픈지 내과에서는 어떻게 진단하는지, 설명을 바라는 마음에 다시 물었다.

 "귀 문제는 제가 말씀드릴 게 없고요. 속이 안 좋으면 어지러울 수 있으니깐, 약을 줄 테니 먼저 먹어보고..."

 질문은 달랐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그러면, 얘가 잘 먹지도 못하고 토해서 기력이 없는데 영양 보충이 될만한 링거라도 놔주실 수 있나요? 실비 보험 있으니깐, 보험 되는 거 중에 좋은 걸로요."

 엄마가 말했다. 영양제라도 하나 맞으면 기력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며, 의사의 동의를 구하는 듯한 어투였다.

 "그러시면 링거 하나 놔드릴 테니깐, 1시간 정도 걸릴 겁니다. 8만 원짜리로 놔드릴게요. "

 의사는 엉덩이를 의자 등받이 뒤로 바짝 붙이고 고쳐 앉으며 말했다.


 난생처음 링거를 팔에 맞고 누워서 보는 병원 천장 풍경은 낯설었다. 오래된 병원만큼이나 주사실의 침구는 낡아 있었다. 꽃무늬의 담요는 색이 바랠 대로 바래, 피가 마른 자국인지 물 빠진 꽃잎 모양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병원이라는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이불 디자인이었다. 아무리 기능이 아름다움에 우선한다 하더라도, 덮고 누워있기 찝찝한 이불이었다. 차라리 약간의 추위를 느끼며, 링거를 맞는 동안 짧게 잠들었다.

 주사 바늘이 꽂혀있는 팔이나 병원 천장이라도 사진 찍어놨을 법한데, 아무런 사진이 남아있지 않다. 웬만큼 아픈 상태를 넘어 제법 앓기 시작했던 걸로 기억한다. 제주도를 다녀온 날부터 3개월 동안 내 휴대폰은 아무 사진도 찍지 못했다.




 링거 실비 보험금을 신청하고 이튿날, 보험사에서 연락이 왔다. 보험사는 보험금을 신청한 링거가 '간기능 치료'에 사용될 때만 보험금 처리가 된다고 했다. 보험 처리되는 약을 의사에게 확인받고 처방받았다고 했지만, 보험회사는 규정에 따라야 한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보험금을 받을 것이라 생각해 비싼 링거를 처방받은 터라 당황스러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굳이 비싼 거 안 맞았지...' 속으로 생각했다.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을 애써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납득되지 않는 일을 납득이 될 때까지 부딪히는 사람이 있다. 엄마는 후자의 사람이어서, 보험금을 받을 수 없는 링거를 애초에 왜 의사가 처방해 줬는지 따져물어야만 했다.

 "내가 보험 되는 링거 해달라 말이라도 안 했으면 억울하지 않지."

 엄마는 홀로 병원을 다시 찾아가 약값을 돌려받았다.

 "의사가 아니라 순 장사치더라. 실비 보험이 안되더라고, 실비 보험되는 약을 달라고 했는데, 왜 안 되는 약을 처방했는지 물으니깐, 너희 엄마가 또 경우가 없지는 않지, 당연히 예의 있게 차분하게 물었지, 별 다른 말없이 뒤에 서랍에서 하얀 봉투 꺼내서 주데. 찾아와서 안 따지면 좋고, 따지면 준비해 둔 봉투 돌려주고, 현금 돌려줘도 의료보험공단에서 받는 돈 치면 남는 장사겠지. 이런 경우가 많은 갑더라."

 엄마는 당신의 무용담을 후련한 표정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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