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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사람 Feb 19. 2023

넘어져도 일어나서

제주 열흘살이

9월 7일 화요일

 이튿날, 개운한 기분으로 일어났다. 어지럼증이 없지 않았지만 적어도 속이 불편하진 않았다. 침을 맞은 효과가 확실히 있는 모양이었다. 엄마는 제주에 있는 동안 꾸준히 침 치료를 받으면서, 풍경이 좋은 곳도 한 군데씩은 들러서 구경하자고 했다. 힘들더라도 계속 몸을 움직여야 빨리 건강이 회복된다고, 엄마는 믿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제주에 남은 일정동안, 오전에는 한의원을 들러 침을 맞고 오후에는 가고 싶은 한 곳을 정해 다녀오게 된 것이다.


 경치가 아름다운 곳을 주로 다녔다. 그러면서도 숙소에서 버스로 다닐 수 있을 만한 곳으로 다녔다. 한의원에서 멀지 않은 외돌개나, 엄마가 제주에 올 때마다 들린다는 에코랜드 같은 관광지에도 갔다. 산방산 밑에 있다는 장어덮밥 맛집을 가기 위해 왕복 3시간 거리를 다녀오기도 했다. 막상 식당에 도착했을 때, '재료소진' 안내판만 보고 돌아와야 했지만. 외돌개 일대는 드라마 '대장금'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이었는데, 드라마가 방영된 지 오래됐음에도 곳곳에 '대장금'의 흔적이 곳곳에 아직 있었다. 꼭 드라마의 유명새가 아니더라도, 화산 활동으로 생겼다는 바위섬의 절경은 그 자체로 사람들이 찾아오기 충분해 보였다.


 에코랜드는 제주의 자연을 한 곳에 모아 꾸며놓은 일종의 테마파크라 할 수 있었다. 넓은 부지에 구역 별로 섭생이 비슷한 식물들끼리 가꾸어놓아, 꼬마 열차를 타고 구역 사이를 이동하며 자연을 감상하는 공간인 것이다. 구역 별로 특색 있는 산책로며 포토 스폿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며칠간 내린 가을비 탓에 질어진 땅 위를 더 신경 써서 걷고, 구역을 이동할 때마다 열차를 기다려야 하는 번거로움에도 조용히 자연 속에서 휴식하기 좋았다. 평소에 사람이 필요에 따라 자연의 모양을 바꾸는 일을 폭력이라 여겼음에도, 어떤 인간의 손길은 자연을 더 돋보이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하루는 올레길을 걸었다. 농막 근처에서 제주 올레길로 합류해 따라 걸어갈 수 있는 코스였다. 해안선을 따라 바다를 보면서 걷다 보면, 막혀있던 몸의 순환이 원래 건강한 상태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아니, 다시 정상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걸었다. 잘 포장되어 걷기 쉬운 길이 있는 반면, 꽤 경사 있는 언덕길을 걸어야 하기도 했다. 평탄한 길은 어지러워도 잘 걸을 수 있었지만, 돌이 많은 오르막길은 더 심한 어지러움으로 걷기 힘들었다. 걸을 때 몸이 많이 움직일수록 눈앞의 시야가 심하게 흔들려 땅에 발을 제대로 딛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엄마를 붙잡고 걸으면서도 수 차례 넘어질 수밖에 었었다. 아프고 불편한 개인의 사정은 힘든 길을 갈 때 비로소 나타나는 것일지 모른다. 그리고 체감되는 고통은 언제나 어려움 그 자체보다 더 크다. 넘어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넘어졌음에도 일어나 다시 걸어야 하는 것이 현실의 비극이기 때문이다.


 열흘의 시간은 빨리 지나갔다.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심하게 앓는 동안 천천히 흐르던 시간이 파도처럼 한순간에 휩쓸려 간 듯했다. 몸 상태는 휴가 이전과 크게 달리진 것 같지 않았지만, 건강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계속 쉴 수도 없었다. 몸이 아파도 먹어야 살 수 있어서 먹고사는 일은 중단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아직 회복되지 못한 아들을 혼자 서울로 보내지 못해서 김포행 비행기에 함께 몸을 실었다. '왜 어지럼증이 사라지지 않을까?' '왜 건강이 회복되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을 애써 숨기면서도 엄마는 불안한 눈빛까지는 감추지 못했다.


 "얼마 만에 우리 아들이랑 이렇게 시간을 오래 보내는지 모르겠네! 아파서 고생은 하지만,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한편으로 좋기도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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