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
9월 13일 월요일
코로나19 화이자 백신 1차 접종을 했다. 백신을 맞으면 이틀 동안 특별휴가를 쓸 수 있었는데, 계획대로라면 열흘 간의 제주살이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 조금 더 휴식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계획과는 달리 몸이 낫지 않아서, 특별휴가를 휴식이 아닌 건강을 회복하는 시간으로 써야 했다. 오히려 휴가가 끝나가는데도 어지럼증이 낫지 않아 마음이 더 분주했다. 대개 계획한 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았다(정말 계획대로 됐다면, 제주에 도착하는 날에 병이 낫고, 열흘간 신나게 여행 한 다음, 백신을 맞아서 출근을 유예하고, 수요일부터 사무실에서 삼일 동안 일하다, 다시 추석 연휴를 맞이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가장 길고 효율적인 휴가 일정을 세우고, 휴가를 꿈꾸면서 일상을 견뎌내는 것이 직장인의 숙명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백신 접종을 예약한 곳은 집 근처 가정의학과 의원이었다. 가정의학과 의원이라니,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병원이었다. 가족 간의 불화라든지 가정생활에서 생긴 마음의 병을 고친다는 것인지,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의원 안으로 들어갔다. 병원 안에는 어린아이의 성장 주기에 따라 맞아야 하는 예방주사 안내부터 어르신들의 허리 통증에 효과가 있다는 치료 홍보물이 벽에 붙어있었다. 의원은 가족 구성원 모두, 어떤 병이든 진료할 수 있는 곳이라고 스스로 대답하는 것 같았다. 전문진료과목이 없는 대신 아픈 환자 모두를 치료할 수 있는 병원계의 올라운드 플레이어라고(아! 설마 가정의학과의 가정이 'if'는 아니겠지? 가령, '어디 어디가 아프다고 가정하고 치료해 보겠습니다!'처럼).
병원 안으로 같은 시간대에 접종을 예약한 사람들이 들어왔다. 1시간마다 6명이 배정되었는데 백신 한 병에 6인분의 주사약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백신이 부족한 시기였으므로 낭비되는 주사약 없이 가장 효율적으로 백신을 접종하는 일이 중요했다. 또 냉장 보관된 백신은 개봉한 지 6시간 안에 접종해야 효과가 있어서, 처음 예약한 사람이 접종을 취소하면 실시간으로 잔여백신을 맞을 사람을 모집해야 했다. 미리 백신접종을 예약하지 못한 사람들은, 저마다 휴대폰으로 잔여백신이 있는 병원을 검색했다. 주사기를 만드는 뛰어난 기술로 유명해진 회사도 있었다. 주사기에 주사약을 조금도 남기지 않고 전부 투여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백신 1병으로 7명까지 접종할 수 있게 만드는 주사기는 세계적으로 수요가 넘쳐서, 회사의 주식도 나날이 폭등한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시대이자 그 덕에 돈을 버는 사람도 많은 세상이었다.
백신을 맞으러 온 사람들은 병원에 온 순서대로 앉아 사전문진표를 작성하고 주사 맞을 순서를 기다렸다. 의사는 한 명씩 순서대로 불러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백신을 접종했다. 한 명씩 진료실에 들어갈 때마다, 나머지 사람들은 한 칸씩 자리를 당겨 앉으며 자신의 순서를 기다렸다. 아무도 말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만 보고서 서로 소통하고 있었다. 마치 공장에서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같으면서도, 거대한 적 앞에서 손을 맞잡고 끝까지 저항했다는 어느 전쟁터의 영웅들 같았다.
"제가 최근에 어지럼증이 있는데, 병원에서는 귀에 전정신경염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코로나 백신을 맞아도 괜찮은가요? 몸이 안 좋으면 백신을 맞는 것이 건강에 더 위험할 수도 있다고 해서요."
주사를 맞으러 들어가서 의사에게 물었다. 실제로 코로나 백신을 맞고 심장에 이상이 생겼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의사는 어지럼증이든 전정신경염이든, 코로나는 호흡기에 생기는 병이라 관계없다고 대답했다. 심장은 호흡기와 어떤 관계가 있기에 백신 부작용으로 심근염이 생기나요? 재차 묻고 싶었지만 질문을 속으로 삼켰다. 이틀의 특별 휴가를 받으려면 백신을 맞아야만 했으므로 그 이상의 질문은 필요치 않다고 생각했다. 의사는 백신을 맞고 나타날 수도 있는 부작용에 대응할 수 있도록 병원에서 얼마간 더 있다가 가라고 했다. 팔에 백신을 맞고 15분가량을 병원에 더 앉아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구역질이 올라왔다. 제주에서 며칠 고생한 이후 속병은 나았다고 여겼는데, 다시 올라오는 구토에 혼란스러웠다. 먹은 것보다 더 많이 토할 수 있다는 인체의 신비를 체험한 것이다. 코로나 백신 후유증을 염려할 겨를도 없이 변기에 머리를 처박고 한참을 토했다. 노란 위액까지 뱉어내고서야 구토가 멎었는데, 토가 멎고서는 온몸에 힘이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었었다. 코로나 백신 후유증이라 증명할 수 없었지만, 주사를 맞고 건강이 다시 나빠진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엄마는 후유증이 있을 수 있다는 백신 주사를 괜히 맞았다며, 휴가 며칠 얻으려 주사 맞겠다는 아들을 끝까지 말리지 않은 스스로를 자책했다. 아들의 어리석은 선택도 아들의 건강악화도, 엄마는 모두 당신의 실수라 여겼다. 엄마는 자식의 고통 하나마다 열 배 스무 배 더 아팠다. 자식은 자식의 자식이 생길 쯤에야 겨우 짐작할 사랑이었다.
특별휴가 이틀 동안 몸 상태는 호전되지 않아서, 명절 연휴가 시작되기까지 휴가를 3일 더 냈다. 긴 기간 출근하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눈치를 살필 정신은 없었다. 잘 먹고 잘 살겠다고 발버둥 치던 일상의 굴레조차 병마 앞에서 다 무용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