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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사람 Jan 22. 2024

각각의 입원실

이틀 만에 정해진 수술일정

12월 7일 화요일 오전

 점심시간이 오기 전에 병실을 옮겼다. 처음 배정받은 5인실은 환자들을 검사하고 관찰하는 특수한 입원실이라 다른 일반실에 자리가 날 때까지 임시로 배정되었기 때문이다. 새로 옮긴 병실은 6인실이었다.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수시로 오가는 간호사로 시끄러웠다. 입원실은 좁았다. 침대와 침대 사이에는 보호자 한 명이 겨우 비집고 앉을 정도의 공간뿐이었다. 침대는 입구 왼편에 안쪽 벽면을 머리 방향으로 3개, 문을 마주 본 방향으로 3개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다. 눈앞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커튼 너머 들리는 사람들의 소리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환자들은 얇은 커튼을 사이에 두고 원하지 않아도 서로의 투병을 공유하고 있었다.


 입구 왼편 두 번째 내 자리를 중심으로, 오른편 환자는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였다. 그는 뇌암 판정을 받고 근래에 수술을 받은 것 같았다. 수술을 받고 회복하던 중, 코로 뇌수가 흘러나오고 몸의 균형을 잡기 어려운 증상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남자가 자신의 증상에 대해 스스로 말하는 것 자체를 힘들어해서, 그의 부인이 대신해 남편의 증상과 건강상태를 간호사에게 수시로 전달했다. 부인이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남자가 침대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났는데, 이후로 남자의 침대는 다음날 아침까지 비어 있었다. 여러 가지 검사와 응급치료 때문이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왼편에 있는 다른 남자는 중증환자였다. 그는 지주막하출혈로 쓰러진 후 급하게 병원으로 실려왔지만 치료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친 것 같았다. 의식이 없는 상태로 인공호흡기에 목숨을 유지하고 있었다. 혼자서는 가래도 뱉어낼 수 없어서, 간병인이 기계로 기도가 막히지 않게 가래를 빼줘야 했다. 목에 가래가 걸릴 때마다 남자는 거친 숨소리를 냈는데, 불편한 소리를 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모두 괴로웠다. 관장을 할 때마다 퍼지는 악취는 더욱 괴로워서 창문을 열어도 소용없었다. 간병인은 남자에게 수시로 같은 동영상을 반복해서 틀어줬다. 동영상은 남자의 딸이 영상편지를 찍어 보낸 것이었다. '아빠 보고 싶어. 아빠 만날 때까지 엄마 말 잘 듣고, 공부도 잘하고 있을게. 아빠도 어서 나아서 돌아와.' 입원실 전체에 울리는 딸의 응원이 아빠에게 닿는지 닿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영상이 반복될수록 마음이 아파서 차라리 남자가 못 듣기를 바랐다.


 남자의 간병인은 일정한 시간마다 남자의 가족과 통화했다. 그녀는 그날 남자의 건강상태를 전해주는 것보다 본인이 얼마나 수고스러운지를 더 강조하며 말했다. 환자와 이야기하라며 전화기를 남자에게 가까이 놓아도, 남자가 반응할 수 없었으므로 통화는 그리 길지 않았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유난스레 남자를 보살피는 듯 보였던 간병인은 주위에 보는 사람들이 없으면 따로 통화하느라 바빴다. 밤에는 아예 무신경했다. 밤새 남자는 가래가 끓어 컥컥거렸는데, 그녀는 더 큰 소리로 코를 골며 자느라 간병은 뒷전이었다. 정말로 남자가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순간이 돼서야 귀찮은 듯 일어난 그녀는 '오늘 왜 이렇게 힘들게 하니' 중얼거렸다. 남자의 목에 걸린 가래를 빼내는 소리가 짧게 나고, 여자의 코 고는 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남자가 괴로워하는 가쁜 숨소리 때문인지, 이 모든 일을 가까이서 듣고 심란해진 탓인지, 나는 저 사람을 살려달라고 여러 번 기도 하고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내 침대 맞은편 환자는 계속해서 진통제를 달라고 요구했다. 20대 남자의 말소리는 어눌한 편이었다. 원래 소통이 어눌한 사람인지, 병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계속 머리가 아프다며 수시로 소리를 지르고 간호사를 불렀다. 처음에 간호사는 환자의 진통을 누그러뜨리려 필요한 만큼의 진통제를 주사했는데, 남자는 약이 듣지 않는다며 계속 고통을 호소했다. 남자는 특정 진통제 이름을 대며 주사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간호사는 그것이 마약성 약품이라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다른 병원에서부터 마약성 진통제를 빈번하게 맞아 일종의 중독 증세가 생긴 것처럼 보였다. 간호사는 강한 진통제의 위험성을 설명하고 환자를 타일렀다. 즉시 고통을 없애는 약은, 약이 아니라 독일지도 모른다. 약에 익숙해진 몸엔 더 독한 약이 필요하고, 더 강한 약이 없을 때 닥쳐오는 통증은 손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견디지 못할 고통은 사람을 통째로 집어삼킨다. 때때로 아픔을 견디고 참아내는 일은, 후에 다가올 더 큰 고난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함일지 모른다. 아픔을 이겨낸 경험은 그만큼의 면역력인 것이다.


 회진시간이 되어 담당 의사 선생님이 찾아왔다. 외래 진료실에서 봤던 것과 달리 혼자가 아니었다. 여러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함께 온 것이다. 한때 유행하던 의료 드라마에서 비장한 배경음악과 함께 회진을 하던 의료진 무리보다는 소박해 보였다(배경음악이 없어서 그랬을까).

 "내일 바로 수술할 겁니다. 원래 있던 수술 일정 사이에 스케줄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으면 내일 수술 들어갈 테니 오늘 미리 해야 하는 검사를 다 하세요."

 이후 전문의로 보이는 다른 의사가 회진하는 무리에서 잠시 빠져나와서 필요한 검사에 대해 설명했다. 뇌혈관조영술과 뇌 MRI가 그것이었다. 수술할 때 참고할 수 있도록 수술 직전의 머릿속 상태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뇌수술이 얼마나 큰 수술인지 두려워할 겨를도 없이, 서둘러 잡힌 수술 일정이 마냥 다행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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