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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사람 Jan 16. 2024

'전업환자'

입원실 배정

12월 6일 월요일 밤

 체온을 재고 코로나19 증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응급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응급센터 안에는 많은 환자들이 침대마다 누워있었다. 각 침대에는 커튼이 쳐져 있었는데, 방처럼 구분된 모습이 꼭 벌집 같았다. 작은 벌집 구멍 사이로 사람들의 앓는 소리만 이따금씩 새어 나왔다. 구멍마다 의료진이 바쁘게 오가며 진찰하고 있었다. 똑같이 생긴 침대에 누운 환자들은 제각기 다른 전쟁을 치르는 중이었다.


 침대에 누워 링거를 맞으면서, 수시로 검사실로 이동해 입원을 위한 사전검사를 받았다. 심전도검사, 혈액검사 그리고 뇌 CT 촬영 같은 것이었다. 안과 검사도 했는데, 높은 뇌압 때문에 시력이 영구적으로 손상됐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검사가 끝나면 다시 응급실에 누워 있을 뿐이었다. 눈을 감고 있으면 다른 감각이 더 예민해졌는데, 특히 다른 환자들의 이야기 소리가 귀에 잘 들렸다.

 "아고! 아고! 선생님! 빨리 좀 봐주세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아이고! 아이고! 죽겠어요!"

 "어머님~ 이걸로 절대 안 죽어요~ 지금 많이 위급한 환자 분이 있어서 조금만 기다릴게요~"

 "아가씨! 여기 좀 봐줘요!"

 "여기에 아가씨는 없어요!"

 "아가씨 아니에요?"

 "할아버님~ 아가씨 아니라 간호사예요!"

 "으응? 간호사 아가씨~ 여기 좀 봐줘요!"

 모든 응급실 환자가 위중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낯설고, 이토록 심각한 중에도 웃음 나는 일이 생긴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가장 위태로운 사람은 아무 소리도 못 내는 사람이다. 아무 소리 없는 사람은 이미 어둠 깊숙한 곳에 혼자 빠진 것이다. 너무 깊숙이 갇혀서 설사 부르짖더라도 누구에게도 닿지 않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간호사들의 야간근무 교대하는 소리를 듣고서, 벌써 밤이 되었구나 했다. 하루종일 바쁘게 돌아가던 응급센터도 소강상태였다. 레지던트로 보이는 선생님이 찾아와 말했다.

 "환자분, 지금 입원실 자리가 생겨서 입원 병동으로 이동하셔야 해요. 안내를 먼저 해드릴게요. 창구에서 입원수속까지 끝나면 바로 출발할 수 있어요."

 생각보다 이르게 입원할 수 있는 자리가 생긴 것이었다. 원래 일반병동에 있던 환자가 중환자실로 이동하면서 빈자리라고 했다. 밤이 되면 컨디션이 나빠지는 환자가 종종 있다고 했다. 건강이 나빠진 사람 덕분에 내가 치료받을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 마냥 기뻐할 순 없었다.


 입원실은 5인실이었다. 환자들의 상태를 관찰하고 수시로 검사하는 병실이라 새벽에도 사람들이 자주 오갈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몸을 누일 병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다. 응급센터에서 입원 병동으로 이동하자마자 간호사는 키와 몸무게 같은 기본 신체검사를 했다. 몸무게는 마지막에 집에서 쟀을 때 보다 1킬로만큼 더 빠져 있었다. 시간은 늦어 어느새 자정에 가까워서 병실 안은 이미 깜깜했다. 내 자리는 병실 입구 바로 옆이었다. 새어 들어오는 불빛에 의존해 병원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왔다가, 응급실을 거쳐 입원 병동에 눕게 되다니. 수개월 동안 이유도 모르고 앓다가, 하루 만에 진단을 받고 수술을 준비하게 되다니. 많은 일이 있었던 만큼 긴 하루였다.


 입원실에 오는 사이, 종이팔찌 2개가 손목에 감기고 가스밸브처럼 생긴 주삿바늘이 손등에 꽂혔다. 손등에 꽂힌 바늘은 수시로 주사약을 투여하기 위해 혈관에 미리 뚫어놓은 통로였다. 종이팔찌 하나에는 신상정보가 담긴 바코드가 프린트되어 있었고, 나머지 팔찌에는 '낙상주의'라는 글자가 눈에 띄게 쓰여있었다. 놀이공원 자유이용권처럼 생긴 종이팔찌는, 병원 안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출입증이라는 점에서 병원 자유이용권 같았다. 입원복을 입고 병원 자유이용권까지 차자 영락없는 전업환자가 되었다. 가진 모든 시간을 치료에 쏟는 사람을 전업환자라고 한다면, 완전히 낫기 위해서 전업환자가 되는 일은 불가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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