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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사람 Jan 04. 2024

5×5.5×4.5cm

뇌종양 발견

12월 1일 수요일

 눈앞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되자, 엄마는 이비인후과에 다시 가자고 했다. 전정신경염이라는 진단이 오진인지 아니면 이것 또한 병의 증상인지 확인하자는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 몇 달째 이게 무슨 일이고? 병원 가서 진단이 맞나 다시 물어보자.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조금씩이라도 낫는 기미가 보여야지. 병원에 다시 가보자. 이비인후과 갔다가 안과도 필요하면 가고."

 나는 빠져나올 수 없는 늪의 바닥까지 가라앉아가고, 엄마는 다만 내 손을 있는 힘껏 쥐고 있을 뿐이었다. 엄마는 아들이 깊은 늪 속으로 사라질 거라는 두려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무서운 예감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엄마는 걱정을 숨길 다른 표정을 찾지 못해서, 결과적으로 아무런 표정을 지을 수 없었으므로, 얼마나 마음이 무너지고 있는지 옆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엄마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 죽어가는 아들을 살려달라고. 아니, 아픈 원인이라도 알게 해 달라고. 아들을 살려달라 시작한 기도는, 돌처럼 굳은 마음을 무너뜨리는 회개의 고백으로 끝이 나길 매일 반복했다.


 다시 찾은 이비인후과는 여전히 붐볐다. 나이 든 원장의 진료도 여전히 명쾌했다.

 "아직 어지럼증이 있어요? 원래 전정신경염이 금방 낫기도 하고 길게 가면 몇 달 가는 경우도 있어요. 너무 어지럼증이 심하면 멀미약 먹고. 배워간 운동 열심히 하면 나을 거예요."

 의사의 진찰은 처음 진단을 받았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는 게 하나도 없고요. 음식도 못 먹어서 살도 엄청 빠졌어요."

 병세가 악화되었는데도 달라지지 않은 진찰에 반항하듯 대답했다.

 "어지러워서 계속 토하면 살이 빠질 수 있어요."

 인자하게 들리는 어조의 대답에는 아무런 의미가 담겨있지 않았다.

 "이제 눈도 잘 안 보인답니다. 어제 부엌에서 물컵을 잡는데 손을 헛짚더라고요. 아무리 어지러워도 그렇지, 눈이 안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까?"

 엄마는 증세가 악화되었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며 이야기를 거들었다.

 "눈이 안 보인다고요? 내가 수십 년 진료를 봤는데 눈이 안 보인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못 들었는데?"

 "그러면 눈이 안 보이는 건 전정신경염이랑은 다른 거예요? 안과도 한 번 가봐야겠죠? 근처에 선생님이 소개해줄 만한 안과 있으면 알려주세요."

 엄마의 판단과 요청은 의사의 진단보다 더 힘이 있어 보였다. 의사는 길 건너의 안과를 소개해주며 곧바로 가보라고 했다. 진료실을 나오는데, '눈이 안 보인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하는 의사의 혼잣말이 등 뒤로 들렸다.


 안과는 이비인후과보다 한적했다. 진찰을 기다리는 서넛의 환자 다음으로 진료를 접수했다. 점심시간 전 마지막 순서라고 했다. 어디가 불편하냐는 의사의 질문에, 매번 하던 대답을 했다. 다만 이제 눈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여야 했다.

 "눈에는 이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어지러운 거랑 눈이랑 크게 관련은 없어요."

 시력과 안압을 검사해 본 의사가 말했다.

 "눈앞에 초점이 안 잡혀요. 한쪽 눈을 가리면 잘 보이는데, 양쪽 눈을 뜨면 거리감이 없고요. 잘 안 보여요."

 "다른 검사할 수 있는 건 없을까요? 어쨌든 제대로 안 보인다고 하니깐 뭐라도 검사할 수 있는 건 없나요?"

 다른 검사를 더 해봐 달라는 모자의 부탁에 의사는 시신경검사를 해보자 했다. 초록색의 불빛을 쳐다보고 있는 동안 동공이 확장되면, 안구 뒤쪽에 있는 시신경을 촬영하는 검사였다. 검사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시신경을 촬영한 사진에서 터진 혈관이 보였다.

 "여기 사진에 핏줄 터진 게 보이죠? 퍼져있는 혈액량으로 볼 때 핏줄이 터진 지 시간이 조금 흘렀어요. 아마도 피가 퍼질 때 시야를 가렸을 수 있어요. 아직 남아 있는 피는 서서히 자연스럽게 흡수가 될 겁니다."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이어 말했다.

 "그런데 시신경이 이렇게 되는 건, 눈의 문제가 아니라 머리에 압력이 높아져서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의뢰서를 써줄 테니 뇌사진을 찍어보세요. 다행히 지금 눈엔 문제가 없는 것 같아요."


 안과를 나서자마자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영상의학과를 찾아갔다. 3차 병원은 진료부터 MRI 검사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영상의학과는 오래된 병원이었다. 넓은 내부 공간에 비해 인테리어는 낡고 빈약해서 실내에서도 공기가 쌀쌀하게 느껴졌다. 의료기기를 몇 대 두고 급한 환자를 빨리 검사해 주는데, 시끄럽게 돌아가는 MRI 검사기계 때문에 병원보다는 공장 같다는 인상이 들었다.

 "여기서 엄마도 예전에 검사했었다. 아까 안과 나올 때, 마침 여기가 바로 생각나더라. 무슨 검사를 해야 할지도 모르고 가만히 있었던 시간이 속상하다. 이제 뭐라도 해볼 게 생겼으니깐 어서 빨리 검사도 받고, 다시 해결방법을 찾아보자."

 엄마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아픈 아들을 지켜보기만 했던 그간의 답답함을 자책하며 꾸짖는 것 같았다. 그만큼 더 빠르게 판단하고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돌이켜보면 엄마의 선택은 모두 옳았다.


 MRI검사는 40분 정도가 걸렸다. 검사 기계에 몸을 눕히자 기계는 내 상반신을 작은 원통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가만히 누워 자기장이 내 머리를 샅샅이 꿰뚫어 보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원통 속은 시끄러웠다. 귀마개를 했음에도, 딱딱거리기도 하고 윙윙거리는 소리는 계속 들렸다. 소음과 자기장의 상관관계도, 자기장이 내 머릿속을 훑어보는 원리도 몰랐지만, 검사결과가 나오면 곧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검사 중간에 조영제도 맞아야 했는데, 팔에 있는 혈관으로 주사약이 들어올 때 온몸에 불이 붙은 것처럼 뜨거워졌다.


 결과가 나오는 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의사가 부른 작은 판독실에 들어가자 모니터 위로는 MRI 영상이 띄워져 있었다. 내 두뇌 사진이었다.

 "MRI 판독 결과, 소뇌 우측에 양성종양 소견입니다. 사이즈가 제법 큰데, 그래도 모양이 양성으로 보이니깐 너무 걱정 마세요. 영상이랑 진료의뢰서 같이 드릴 테니 빨리 큰 병원으로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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