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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사람 Jan 01. 2024

막막하다는 공포

시력까지 잃다

11월 9일

 다시 사무실로 출근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팀장은 오래 쉬고도 회복하지 못한 내게 재택근무를 권유했다. 코로나19 때문에 회사가 재택근무를 도입하던 시대였다. 보통은 팀원들이 조를 나눠 번갈아 재택근무를 했는데 나에게 당분간 매일 재택근무를 허락한 것이다. 그날로 업무용 노트북을 챙겨 부산 본가로 내려왔다. 유행병은 나날이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었지만, 이미 위기에 놓였던 내게는 도움을 주는 것 같았다. 기차표보다 저렴한 비행기표도 그랬다. 여객 수요가 급감하면서 편도 기차표 값이면 왕복 비행기표를 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장시간 기차를 타는 것보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물론, 혼자 계단을 오르내릴 수 없어서 항공사 직원의 도움을 받아야 했지만.

 "죄송합니다. 제가 어지럼증이 심해서요... 감사합니다."


 재택근무로 출퇴근의 어려움을 덜었을 뿐, 괴로움은 심해져 갔다. 당시 한 달 동안, 벽에 기대어 눈을 감고 고통을 견뎠다는 기억뿐이다. 출퇴근 시간에 맞추어 업무용 노트북 전원을 켰다가 끄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가만히 눈감고 있어도 보통의 어지럼증 위에 더 심한 어지럼증이 발작 같이 찾아왔던 것이다. 숨쉬기도 어려울 만큼 시야가 일그러질 때면, 온몸에 힘을 주고 그 순간이 지나가길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이제야 그 증상에는 두통도 섞여있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때는 끙끙 앓느라 어느 것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아니,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흐릿해지는 의식을 겨우 붙잡고만 있을 뿐, 인간의 존엄은 이미 손밖에 있었다.


 먹는 것마다 토해서, 뭐든 삼키고 나면 토하기 전에 빨리 소화시켜야 했다. 식사 때마다 식구들은 돌아가면서 나를 부축하고 동네를 걸어 다녔다. 걷지 않을 때는 여지없이 먹은 것을 모두 올렸다. 뒷목의 통증도 더 심해져서 고개를 옆으로 잘 돌리지 못할 뿐 아니라, 베개를 베고 똑바로 누우면 아팠으므로 옆으로만 누워야 했다. 화장실 변기에 고개를 숙이고 토할 때면 뒷목으로 번개처럼 날카로운 통증이 덮쳤다. 고개를 숙일수록 토할 때 목에 힘이 들어갔으므로, 통증을 줄이기 위해 고개를 들고 토해야 했다. 변기에 완전히 몸을 숙일 수도, 일어서지도 못한 어정쩡한 자세로 토했다. 닥칠 때마다 겪을 수밖에 없는 재난 앞에서 사람의 몸뚱이는 너무도 무력했다.


 그러는 사이 몸무게가 17킬로 넘게 빠졌다. 제대로 먹지 못하니 살은 계속 빠질 수밖에 없었다. 살이 빠지고 근육이 빠지자 소변이 자주 마려웠다. 몸에 있던 수분이 모조리 빠져나가고 있었다. 튼실하게 붙어있던 양쪽 허벅지 사이엔 크게 빈 공간이 생겨서 두 다리는 마른 고목 같았다.

 “야! 니 완전 할배가 돼뿟다!“

 동생은 몇 달 새 삐쩍 마른 내 몸을 보고 말했다. 웃을 수 없는 현실에 심각한 집안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장난을 섞어 던진 말이었다. 나는 농담인 줄 알면서도 서럽게 울음이 터졌다. 다시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체중계에 오를 때마다 계속 줄어드는 숫자는, 남아있는 희미한 생명의 기한을 표시하는 것 같았다.


 11월 중순이 지나고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엔 어지럼증이 심해져 눈앞에 초점을 빨리 잡지 못하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어느 순간, 한쪽 눈이 보는 사물과 다른 쪽 눈이 보는 사물이 하나의 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한쪽 눈이 보는 시야가 다른 쪽 눈이 보는 시야를 방해해서, 결국 어느 것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양쪽 눈으로 각각 바라보는 사물들이 서로 겹쳐 보여서, 어느 것도 정확하게 볼 수 없었다. 그것이 일종의 복시 증상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간의 고통보다 갑자기 눈앞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공포는 더 컸다. 우리가 어둠을 두려워하는 근원에는, 어둠 그 자체보다 어둠 속에서 제대로 볼 수 없다는 막막함이 자리 잡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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