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사람 Dec 27. 2023

모두 정상입니다

정상이 아니라 말해줘

10월 12일 화요일

 15일간의 병가가 끝날 때까지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오히려 어지럼증과 구토는 더 심해졌다. 걸음은 비틀거렸고, 한 끼를 먹으면 두 번씩 토했다. 매일 이비인후과에서 가르쳐 준, 전정신경 회복을 위한 운동을 했지만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떨어진 기력을 회복하려 내과에서 링거주사도 맞았지만 그리 효과는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병가는 끝이 나서 출근을 해야 했다. 언제 나을지 기약이 없었고 특별한 치료법도 없어서, 무턱대고 출근을 미루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목요일에 코로나백신 2차 접종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이틀만 출근하면 특별휴가로 주말까지 이어서 쉴 수 있었으니까.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일은 그 자체로 어려웠다. 출근길 사람들 사이를 뚫고 버스에 올라타는 것도, 넘어지지 않으려 뭐라도 꼭 잡고 가만히 서있는 것도.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세상은 내 머릿속에서만 뒤집어졌다. 내 눈에만 휘청이는 세상이어서, 다른 사람의 눈에 흔들리는 것은 내 몸뚱이뿐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모든 발걸음을 신중하게 천천히 옮기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어쩌면 출근하는 모든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을 연기하는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각자 홀로 겪는 고통을 아무렇지 않은 표정 아래로 감추고, 겨우 겨우 한 걸음씩 움직이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오랜만에 출근을 했지만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밀린 일이 얼마나 많은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컴퓨터 모니터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 것도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눈에서 화면이 자꾸 흔들려 속이 매스꺼웠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 구토가 올라오면 화장실로 달려가 이미 빈 속을 계속 게워냈다. 회사 동료들은 걱정하며 안부를 물었지만, 대답을 듣지 않고도 회복되지 않았음을 알았다. 덥수룩하게 길게 자란 머리와 미세하게 떨리는 눈빛에는 이전과 다른 병색이 깃들어 있었다. 힘들어도 움직여야 빨리 회복된다는 이비인후과 의사의 말을 떠올리며 회사 주차장을 걸어 다녔다. 그때 나는 모든 힘을 쥐어짜 내 출근을 하면, 유령처럼 걸어 다니고 수시로 토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아니, 견뎠다. 몸이 아픈 고통보다 괴로운 건, 아픔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막막함이었다.


 코로나 백신 2차 접종을 맞고 나서 건강은 더 안 좋아졌다. 숨쉬기가 어려워져서 아무리 깊게 숨을 쉬어도 가슴이 답답했다. 코로나 백신 후유증을 의심하며 심전도 검사와 폐기능 검사를 했지만 결과는 정상이었다. 백신과 건강악화의 상관관계를 밝힐 수 없었지만 몸이 나빠지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회복되기는커녕 전보다 빠르게 악화되고 있었다. 도저히 출근을 할 수 없어서 이듬해 연차를 미리 당겨 쓰기로 했다. 남은 10월 전부에 휴가를 내고 다시 부산 본가로 내려갔다. 엄마는 전정신경염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전정신경염이 맞았으면 벌써 다 나았어야지. 다른 병원들도 다 다녀보자. 어디가 안 좋은 건지 원인이라도 확실히 알아야지."


 내과에 갔다. 간에 문제가 생겨도 구토 증세가 있을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피검사 결과에는 이상이 없었다.

 "문제가 될 건 없는데... 혹시 머리 사진은 찍어봤어요?"

 정형외과에 갔다. 10월에 들어서고부터 뒷목이 아팠기 때문이다. 엑스레이 결과에는 이상이 없었다.

 "보통의 직장인들이 갖고 있는 일자목 증상이 조금 있네요. 어지럼증이랑은 상관이 없어요. 뒷목이 뻐근하다고 하니 물리치료를 받고 가세요."

 통증의학과에 갔다. 어느 병원에서도 어지럼증도 뒷목이 아픈 원인을 찾을 수 없어서였다.

 "이런 경우엔 저희도 치료하기 어려워요. 효과가 없을 수 있고, 오히려 더 안 좋아질 위험도 있거든요."

 기(氣) 치료 건강원에도 갔다. 어떤 병원에서도 아픈 이유와 치료법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라도 가보자. 엄마 아는 사람이 손목이랑 어깨랑 아파서 고생이 많았는데, 병원에서도 못 고치는걸 여기서 고쳤단다."


 어느 병원에서도 한의원에서도, 심지어 대체의학에서도 내가 아픈 이유를 몰랐다. 검사를 할 때마다 모두 정상이어서, 도대체 왜 어지러운지? 왜 토하는지? 왜 숨이 찬 지? 왜 뒷목이 아픈지? 밝힐 수 없었다. 별 소득 없는 10월이 지나고, 다시 출근해야 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서 다시 매일을 버텨야 하는 앞날이 아득했다. 돌이켜보면 모든 검사결과는 다 맞았다. 틀린 게 있다면, 머리 밑으로만 모든 검사를 했다는 것이다. 뒤돌아보면, 정답이 '저요!'하고 손 들고 있어도 당시에는 보지 못하는 일들이 많다.

이전 10화 병가 십오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