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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사람 Jan 28. 2024

한 번 죽은 사람

개두술

12월 8일 수요일

 수술날이었다. 세균 감염을 막기 위해 소독용 샴푸로 감은 머리는 헤어캡 안에서 뻣뻣하게 굳어 있었고, 손등으로는 뇌압을 줄이는 약과 수액 링거가 계속해서 투여되고 있었다. 그밖에 수술날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르지 않았다. 엄마는 수술일정이 정해지고부터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소식이 전해지자 다니던 교회에서도 새벽예배 시간에 나를 위한 기도순서를 마련했다고 했다. 담임목사님은 전화로 수술시간이 언제인지, 이후의 치료과정이 어떤지 물었는데 상황에 맞추어 상세히 기도해 주기 위해서였다. 통화 끝에 전화기를 붙잡고 함께 기도했다.


 예정된 수술 시간은 오후 3시였지만, 앞순서 수술이 끝나는 대로 내 차례라고 했다. 원래 있던 스케줄 사이에 추가된 일정이었기 때문이다. 1시가 조금 지나자 간호사가 수술장으로 이동 준비를 하라고 알려왔다. 환자이송원이 이끄는 침대에 실려 수술장으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 앞에 다다랐다. 보호자가 더 이상 따라갈 수 곳에 이르자 엄마는 내 손을 잡고 기도했다. 하나님이 의사 선생님의 손을 붙잡아 달라고, 수술하는 사람이 실수하지 않게 해달라고, 사람의 손을 빌려 직접 병을 고쳐달라고. 엄마의 얼굴은 아들 걱정으로 몇 달 새 수척해졌지만 눈빛은 더 깊어지고 강인해 보였다.

 "엄마, 수술 잘 받고 올 테니깐 걱정 말고 좀 쉬세요."

 두려움을 애써 내색하지 않으려는 엄마, 겹쳐서 두 개로 보이는 엄마를 쳐다보며 말했다.


 복도를 따라 이어진 여러 개의 수술방 중 하나로 들어갔다. 여러 명의 의료진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각자 맡은 임무와 정해진 순서에 따라 일사불란했다. 침대에 누인 채 한 번에 들려서 수술대로 옮겨졌는데, 몸에 닿은 금속성의 수술대는 차갑고 딱딱했다. 실내 온도도 낮아서 몸에 든 한기 때문에 어금니가 부딪힐 만큼 추웠다. 수술대에 올려지자마자 팔다리를 단단하게 고정시키는 것이 느껴졌다. 도마 위에 올려진 한 마리 생선이 된 것 같았다. 동시에 마취마스크가 얼굴 앞으로 다가왔다. 곧이어 기도삽관으로 인공호흡기가 연결될 것이었다. 뇌수술 중에는 자가호흡으로 생기는 작은 움직임마저 용납되지 않아서 숨조차 쉬지 않을 만큼 깊게 마취해야 했다. '심호흡하세요.'라는 말소리를 듣고 큰 숨을 두어 번 쉬었을까. 깊게 잠이 들었다. 그것이 수술방에서 남아있는 기억 전부였다. 그때 나는 한 번 죽은 사람이었다.


 죽어있던 6시간은 수술확인서에 기록으로만 남았다.

수술 소견

 뇌부종은 상당하였고, 수술 종료 시에는 소뇌가 움푹 들어감

 종양은 매우 과다혈관 상태로, 혈액이 빠져나가는 정맥은 상측방에 있었고 응고되었음

 일괄절제술로 주변 조직을 포함하여 제거하였음

수술 과정

 반듯하게 누운 자세에서 어깨에 쿠션을 대고 머리를 반측면으로 고정

 핀으로 고정하여 수술 부위 면도 시행

 완만한 'S'자로 피부 절개하고 머리널판근을 아래 측방으로 젖힘

 두개골 절개 시행하였고 가로'S'자 경계 확인함

 뒤통수뼈 관절 융기 뒤에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 확인할 때까지 구멍 뚫기 시행하였음

 바늘로 낭종에 천자하여 12cc 정도 배액하였음

 절제술 시행하였고 소뇌 숨뇌 수조에서 뇌척수액 배출하였음

 초음파 사용하여 낭종 위치 확인하였고 낭종 천자 하였음

 낭종벽에 견인기를 건 후에 적갈색 고형 부분 확인함

 주변을 포함하여 일괄절제하였음


 수술대에서 다시 일반 환자침대로 옮겨져 중환자실로 이동할 때 정신이 들었다. 중환자실에서 하룻밤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다시 잠들지 않게 깨어 있으라고도 했다. 머리를 수술했는데 온몸이 뻐근했다. 손끝 하나라도 움직이면 안 될 것 같아서 중환자실 천장만 보고 가만히 있었다. 목에서는 가래가 올라왔다. 수면마취 때문에 생긴 가래를 삼키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생각나 입 밖으로 연신 뱉어냈다. 중환자실로 찾아온 집도의는 내가 마취에서 깼는지 확인하고, '수술 깨끗하게 잘되었으니 걱정 마세요.'라고 했다. 그 사이 간호사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중환자실로 잘 이동했다고 알렸다. 간호사는 의식이 돌아온 내게 전화기를 건넸다.

 "여보세요? 엄마?"

 "수술 잘됐단다. 잘 견뎌줘서 고마워 아들! 내일 일반병동으로 옮기면 보자! 고생했다!"

 엄마는 이미 수술 결과를 알고 있었다. 봉합하기 전 종양 절제를 마치고 집도의 선생님이 직접 전화했다고 했다. 중요한 수술은 계획했던 대로 무사히 잘 끝냈다고, 다른 의사 선생님이 봉합하고 수술을 마무리하고 있다고, 1~2시간 안에 마치고 중환자실로 이동할 거라고. 머리가 열렸다가 닫혔다는 사실이 실감되지 않았지만, 내내 짓눌리는 것 같던 머리가 한결 가벼워졌음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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