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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사람 Feb 08. 2024

보통의 어른

7일 만에 퇴원

12월 12일 일요일

 입원실에서의 하루는 단조로웠다.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하고 약을 먹었다. 입원실 복도를 걸어 다니고 비상계단을 오르내렸다. 움직이다 지치면 병실로 돌아와 짧게 낮잠을 자고 쉬었다. 일정한 시간마다 간호사가 찾아와 간단한 검사를 했다. 무슨 요일인지 물어 인지능력을 확인하거나, 팔다리에 힘이 잘 들어가는지 움직임을 관찰하는 식이었다. 하루에 한 번씩 수술 부위 소독도 했다. 머리에 칭칭 감은 압박 붕대를 풀어 소독하고 다시 붕대를 감았다. 수술 부위는 염증 없이 깨끗해서 잘 아물고 있었으나, 아직 많이 부어서 잘 때도 수술한 방향으로 누워 강하게 눌러야 했다. 회진 시간이 되면 의사 선생님이 찾아와 진찰했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고 밤이 왔다. 입원 생활은 단순했지만 바빴다.


 일반병동으로 이동한 다음날 척추 MRI 검사를 했다. 전이되지 않는 양성종양이라도 신경계 전체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만약 또 다른 종양이 있다면 신경계에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복부 CT 검사결과도 정상이어서 척추 MRI는 마지막 관문이라 할 수 있었다. 척추 MRI는 영상을 찍어야 하는 부위가 넓어서 오랜 시간이 걸렸다. 꼼짝없이 좁은 검사 통 안에서 가만히 누워있어야 했는데, 환자복을 입고 붕대로 머리를 싸맨 모습이 미라 같아서 검사하는 통은 자연스레 관 같았다. 혹여나 다시 종양이 발견되면 또 수술해야 한다는 사실이, 척추 MRI 검사를 이전에 했던 다른 검사들보다 더 겁나게 했다. '하나님, 더 이상은 감당하기 힘듭니다. 이 관 밖으로 일으켜주소서.' 검사를 받고, 며칠 뒤에 결과가 나오기까지 내내 속으로 기도했다.


 병이 낫고 있다는 첫 번째 증거는 밥을 먹어도 토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수술한 후로 구토가 멎은 것이다. 하루 만의 변화가 신기할 정도였다. 목이 부어 물도 제대로 삼키지 못하면서도 끼니때마다 나오는 병원 밥이 너무 맛있었다. 한 번 꿀꺽 삼켜서 넘어가지 않는 음식을 여러 차례 삼켜서 식도 안으로 밀어 넣는 방법으로 밥을 먹었다. 4개월이 넘도록 제대로 먹지 못하던 몸이 그간의 굶주림을 한꺼번에 보상받으려는 것 같았다. 17킬로가 넘게 줄어든 체중은, 이후 한 달에 5킬로씩 늘어 금세 원래대로 돌아왔다. 엄마는 아들이 밥을 토하지 않고 먹는 것이 기특했다. 걸음마가 조금씩 느는 것, 밥을 토하지 않고 먹는 것이 다 칭찬거리가 되었다.


 어린아이 때 칭찬받는 일은 나이가 들면 당연한 것이 된다. 처음엔 특별한 일도 자라면서 보통의 일상이 되기 때문이다. 비범한 것이 평범한 것으로 변하는 시간을 통해 어른이 된다면, 칭찬은 어린이를 성장시키는 재료일지 모른다. 두 번째 삶을 새로 시작한 사람에게 사소한 칭찬이 필요한 이유였다. 다시 보통의 어른으로 회복하기 위해 혼자 걸음을 걸었다는 칭찬, 밥을 남기지 않고 먹었다는 칭찬 같은 것들이 새로 유효했다.


 입원한 지 7일 만에 퇴원했다. 수술한 지 5일째이자, 일반 병동으로 이동한 지 4일째 날이었다. 입원실이 부족해서 빨리 퇴원시키는 것이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생기기도 했다. 다행히 의사는 수술 직후에 문제가 없었으니 퇴원하고 경과를 지켜봐도 괜찮다 했다. 머리 안에 문제가 생기면 봉합한 부위 바깥에 곧바로 염증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 수술 부위가 잘 아물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미심쩍을 만큼 이른 퇴원은 그만큼 수술이 잘되어 회복에 걱정 없다는 이야기와 같았다.


 일주일간의 병원비를 계산하고, 퇴원수속을 밟은 후에야 병원을 나설 수 있었다. 보험금 신청을 위해 진단서와 진료비 세부내역서 같은 서류도 미리 발급받았다. 서류는 일주일간의 입원비와 수술비 그리고 처방받은 약값으로 가득 차있었다. 다행히 지불해야 할 병원비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뇌종양은 산정특례제도가 적용되어 의료보험혜택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산정특례는 난치병 환자 한 명을 돌보다 한 가정 전체가 빚더미에 앉을 수 있는 위험을 줄이기 위한 제도였다. 건강할 땐 있는 줄도 모르다가 아프고서야 의지가 되는 것이 복지의 효용이었다. 병원을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낯설었다. 아니 새로웠다. 오랜만에 바깥으로 나온 탓이기도 했지만, 다시 태어난 후 실제로 처음 만나는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외딴섬에 유배되었다가 겨우 벗어나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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