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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사람 Oct 22. 2024

다시 위기는 없다

여러 가지 검사

1월 25일

 한 달이 넘도록 회복에만 집중했다. 수술의 부작용이나 후유증은 없었지만, 수개월 동안 앓았던 몸이 회복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사물이 겹쳐 보이는 복시는 여전했고, 어지럼증은 오히려 더 심해져 혼자 걷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종양 때문에 눌려 있던 소뇌가 다시 원래대로 회복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했다. 힘들어도 계속 움직이는 것이 뇌 기능을 재활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매 끼니마다 밥을 챙겨 먹고 집 앞 불광천을 따라 난지한강공원까지 걷는 것이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정이었다. 먹고, 걷고, 쉬고, 재활의 시간은 단순하게 흘렀다.


 겨울 한강 공원은 맑은 날의 연속이었다. 하얗게 번지는 입김 사이로 투명한 햇살이 비쳤다. 얇은 햇빛 한줄기 스치면 두 뺨이 어는 줄도 모르고 포근했다. 매일 걷는 산책길을 처음에는 엄마 팔을 붙잡고 걸었다. 아프기 전에는 자주 달리기 하던 짧은 거리였지만, 겨우 옮기는 발걸음으로는 한참이 걸렸다. 매일 해조금씩 거리를 늘리면서 운동량도 늘려나갔다. 매일 빠지지 않고 끼니때마다 걸어 다닌 효과 때문인지 점차 혼자서도 성큼성큼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오랫동안 고생한 시간에 비해 회복은 순식간이었다.


 복시가 사라지고 시력이 회복되는 순간은 어느 날 문득 찾아왔다. 비틀거리는 걸음걸이가 점차 균형을 찾아가는데도 회복되지 않는 복시 때문에 불안하던 차였다. 한강공원 산책을 마치고 홈플러스에 장 보러 갔을 때였다. 겹쳐 보이던 마트 광고판이 어느 순간 또렷하게 보이는데, 지지직거리는 낡은 텔레비전이 일순 안테나 전파를 잡아낸 순간 같았다. 수개월 동안 전파를 제대로 찾지 못하던 눈앞 화면이 일순 또렷하게 초점이 잡힌 것이다. 심청이를 본 심청이 아비의 감격이 이랬을까. 한 번 잡혔던 초점은 여러 번 다시 흐트러지기를 반복했지만, 처음 초점을 찾은 후 완전히 시력을 회복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공원 길을 걷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대학병원 이비인후과예요. 28일에 평형기능검사 예약 잡혀있어서 확인 차 전화드렸어요."

  9월 말에 대학병원 이비인후과 진료를 받으며 예약해 놨던 검사였다. 수술까지 다 끝나고야 아픈 원인을 찾겠다고 검사를 받으러 오라니.

 "아 그렇군요. 이제 검사 안 받아도 될 것 같아요. 예약취소 부탁드립니다."

 "대기가 많아서 다음에 다시 검사 예약을 하시려면 또 많이 기다릴 수가 있는데 괜찮으세요?"

 "네, 괜찮습니다. 고생하세요."

 대화는 군더더기 없었다. 수술까지 끝난 사람에게 진단을 위한 검사는 필요하지 않았다. 이번에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면, 몸이 많이 아플 땐 여러 의사에게 진단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 명의 의사를 신뢰할 수 없어서라기보다, 건강 문제에서 시행착오는 치료 기회 자체를 잃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회복하는 동안 병원에 가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 가장 먼저 안과검사를 했는데, 종양 때문에 복시가 생겼으므로 눌려있던 시신경이 손상되지 않았는지 우선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시력검사, 시야검사, 안저검사 등 여러 가지 안과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검사결과는 모두 정상이었다. 뇌압이 정상으로 돌아오면 영향을 받고 있던 눈에도 문제가 없을 거라 했다. 수술하고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때 다시 MRI 촬영을 했다. 의사는 종양이 말끔하게 제거되었고, 남아있는 머릿속 출혈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의학유전학과 검사도 받았다. 이번에 생긴 양성종양이 유전적인 문제로 생긴 것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만약 유전자 자체에 이상이 있다면 한 번으로 병이 끝나지 않을 수 있었다. 아직 오지 않았으나 언젠가 찾아올 위기가 가장 위험한 법이다. 의학유전학과 검사에서 문제가 없다는 소식이 더욱 감사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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