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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사람 Feb 02. 2024

두 번째 삶

중환자실에서 일반병동으로

12월 9일 목요일

 뜬 눈으로 밤을 보내고 다시 새 하루였다. 어쩌면 다시 맞이할 수 없었을 새 삶의 첫날이었다. 두 번째 인생의 첫날도 병원 천장을 보며 가만히 침대에 누워있다는 점에서 첫 번째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중환자실 침대에는 환자가 스스로 버튼을 눌러 진통제를 투여할 수 있는 장치가 있었는데, 다행히 밤새 쓸 필요가 없었다. 두통도 없고 수술한 부위에 통증도 없었다. 경동맥을 지혈하는 반창고와 발등 위에 'X'자 사인펜 표시, 그리고 이마에 찍힌 작은 멍자국이 수술의 흔적이었다. 압박 붕대로 머리 전체를 싸매고 있는 모습은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피조물을 연상시켰다. 부기가 빠지지 않은 탓에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 보여서 더 기괴했다.


 아침식사를 할 때였다. 간호사가 건넨 물을 마시는데 물이 삼켜지지 않았다. 평소처럼 물을 삼키는데도 대부분의 물이 식도로 내려가지 않고 코로 뿜어져 나온 것이다. 당혹감과 함께 밀려온 것은 두려움이었다. 구역 반사에 문제가 생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술 전에 들었던 여러 후유증 중 한 가지였다.

 "간호사 선생님! 저 물이 안 삼켜져요."

 간호사는 나무 막대로 목젖 부근을 콕콕 찔렀다. 순간 헛구역질이 일었다.

 "기도삽관 때문에 목이 부어서 그런 거라, 곧 괜찮아질 거예요."

 다행히 수술 후유증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일주일이 넘도록 물도 밥도 심지어 약도 제대로 삼키지 못해 고생해야 했다. 잘 때는 침도 넘기지 못해 사레들릴까 잠도 편히 잘 수 없었다.


 병원에 있었던 시간을 통틀어 가장 민망했던 순간이 있다면, 중환자실에서 일반병동으로 이동하기 직전에 소변줄을 뽑은 일이었다. 사실 내 몸에 소변줄이 꽂힌 줄도 모르고 있었으므로 간호사가 소변줄을 뽑으러 왔을 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천장만 보고 있다 보니 요도에 소변줄이 달려 있는지도 몰랐던 것이다. 느껴지지도 않았다. 도대체 언제 내 몸에, 내 요도에, 내 성기에 소변줄을 꽂아놨단 말인가. 짐작컨대 누군가 수술방에서 마취되어 늘어진 내 몸에 소변줄을 집어넣었을 것이었다. 소변줄이 뽑히는 것보다 꽂히는 것이 더 수치스러울 것이나 기억에 남아있지 않아 다행이었다.

 "옷 바깥에서 당겨서 뽑을게요. 바지 고무줄 잡고 계세요. '아'하고 소리 내보세요."

 "아... 아아! 아악! 악!!"

 간호사의 요청에 애써 담담한 척했지만 '미'에서 '라'까지 크레셴도로 소리를 지르고야 소변줄이 빠졌다. 난생처음 느끼는 아랫도리의 찌릿함보다 나도 모르게 지른 소리 때문에 더 부끄러워졌다.


 이동한 일반 입원실은 2인실이었다. 창가 쪽 침대에는 허리수술받은 할아버지가 누워있었다. 할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한 것을 빼면 건강해 보였다. 오히려 창 밖 전경을 구경하다가, 텔레비전 채널을 바꿨다가, 입원생활을 즐기는 것 같았다. 위중한 환자가 많았던 6인실보다 마음이 무겁지 않아 다행이라 여겼다. 외래진료를 보자마자 입원을 하고, 사흘째에 수술을 받고, 나흘 만에 느끼는 작은 평화가 낯설었다. 수개월 동안 원인도 모르고 앓은 고통보다 일주일 만에 수술받은 안락이 더 컸다. 사람들은 '운이 좋네요.'라고 했고, 엄마는 '참, 감사하다. 은혜다.'라고 했다. 입원실 배정을 받을 때도 수술을 받을 때도 그랬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일반병동으로 이동하자마자 틈만 나면 걸음마를 연습했다. 일종의 재활훈련이었다. 많이 걷고 움직일수록 눌려있던 소뇌가 빨리 제자리를 찾고 기능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수술 직후에 더 많이 어지럽고 다리가 후들거려서 보행기를 붙잡고 움직여야 했다. 혈전이 생기지 않도록 종아리에 강한 압박 밴드도 해야 했다. 코로나 19로 병원 밖을 걸어 다닐 수 없어서 병원 안 복도만 빙글빙글 돌았다. 다른 환자들도 각자의 회복을 위해 입원실 복도를 돌아다녔다. 모두가 느린 걸음을 내디뎠지만 어떤 달리기보다 힘겨운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이후 매 시간마다 열심히 걸어서, 퇴원할 때는 보행기 없이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수술은 받아야 하는 일이고 회복은 해야 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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