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규격의 틀을 깨고
지금도 기억나는 어릴 적 순간이 있다. 스케치북에 표를 그리는데 조금이라도 삐뚤거나 마음에 안 들면 가차 없이 찢어버리고 다시 그렸다.
그러다 또 마음에 안 들면 찢어버리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새 스케치북이 몇 장 안 남았을 때쯤이 되어서야 무언가를 완성했다.
완벽주의 성격 탓에 완벽하게 못할 것 같은 일은 시도조차 안 해봤고, 한 번 싫다고 하면 좀처럼 고집을 꺽지 않는 아이였다. 한다고 하면 하는, 그러니까 어떻게 해서든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때문에 몸이 고달프게 고생한 적도 많다.
게다가 푹푹 찌는 한 여름에 속옷이 비치지 않는 반팔을 입어도 무조건 나시를 바쳐 입었고, 짧은 반바지나 민소매 티를 입고 외출하는 것도 절대 안 되는 유교걸이었다.
나는 ‘절대 안 돼!’가 많은 사람이었다.
예민하고 민감하고 어쩔 땐 과민해서 싫은 것도 참 많았다. 장점이라면 내가 싫은 게 많으니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거나 싫어할만한 행동과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것 정도. 어떻게 보면 조금은 한발 앞선 배려를 할 수는 있었지만 예민함에서 비롯된 절대 안 되는 것들과 또 그걸 지켜야만 하는 성격이 결국은 나를 옭아매게 했다.
하나하나 쌓여 온 습관, 고착화되는 성격, 그리고 우둔한 고집이 더욱 견고하게 나의 틀을 만들었다.
그저 내가 만든 규격의 틀 안에 갇혀 있었다. 그 틀 안에서 그것들을 지킬 때 안전과 안정을 느꼈다.
집착과도 같았던 십 대와 이십 대를 지나 삼십 대가 되니 관대해지는 것들과 이해되는 부분이 늘어났다.
스스로 ‘절대’ 안된다고 규정한 것들이 자연스럽게 허물어지기도 하면서 “그래, 세상에 절대라는 것이 어딨니?” 깨달았다.
마흔의 나이에 들어선 지금. 그간 책으로만 세상을 경험한 것이, 결국 겁이 많아 도전하지 못했던 것들이 너무도 아쉬웠다. 내 몸으로 부딪히며 자유롭게 이것저것 경험을 쌓지 못하고 시간을 보낸 것이 후회되었다.
왜 그렇게도 나 자신을 가두고 살았을까? 차라리 그냥 막 살아 볼걸 그랬다 싶기도 하다. 물론 지금까지 단정하고 바르게 살아온 삶이 결코 후회로만 남는 건 아니지만.
시간은 유한하고 또 너무 빠르게 지나가며 되돌릴 수 없다. 하루 해가 지는 것도 눈물 나게 아쉬워서 잡고만 싶은데. 더 이상 안전함 뒤에 숨어 되고 안되고를 가르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일단 해보자! 마음먹어 본다.
내가 만든 작고 작은 규격의 틀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가자!
조금은 느슨하고 편안하고 유연한 나 자신이 되어보자! ‘절대‘라는 것은 없으니까.
그래서 ‘절대’라는 것은 없음을 깨달은 나는 올여름 민소매나시를 입고 놀러 가기로 나와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