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감성의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흥얼거리며 돌아오는 차 안이었다.
여름티 몇 장사야겠다 싶어서 막 아웃렛 쇼핑을 마치고 커피도 마시면서 나름 만족스러운 휴일을 보내고 있었다.
출발하고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언니가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울음이 복받쳤다.
나와 네 살 터울인 언니는 몇 년 전에 갑작스러운 희귀병으로 39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나는 아직도 언니의 이름조차 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아픔을 함께 나누고 있는 가족들도 언니에 대해선 언급을 안 한다. 모두가 또 한 번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의 아픔이 터질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언니와 나는 사연이 좀 많다.
언니는 어릴 때부터 고도비만이었고 공부도 잘 못해서 삐쩍 마르고 똘망한 나와 늘 비교를 당했다.
그래도 언니는 나를 하나뿐인 동생이라고 많이 아껴주었다.
친구에게 놀림받아 울고 돌아오면 누가 그랬냐며 내 손을 잡고 운동장으로 가서 그 아이를 혼내줬고,
오래 키우던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아픔을 함께했다.
그리고 내가 난생처음으로 생리를 시작한 날 언니는 혈이 묻은 내 팬티를 빨아주었다.
그런데 나는 언니에게 애증이 있었다.
뚱뚱한 언니가 남들 보기 부끄러웠고 공부를 못해서 부진아인 언니가 창피했다.
언니가 친구의 물건을 몇 번 훔친 적이 있었다는 이유로 내가 중학교 입학하자마자 발생한 도난사건의 용의자가 내가 되기도 했다.
언니 때문에 세상 억울한 누명을 쓴 나는 내 중학교 생활을 망친 언니가 너무 미웠다.
(다행히 그 도난사건의 범인은 내.가.아닌 다른 친구였음이 밝혀졌고, 무난하게 중학교를 다니긴 했다.)
야속하게도 걸핏하면 말썽 부려 부모님 속을 썩이는 언니가,
다른 친구들의 언니보다 부족한 언니가 내 언니인 게 싫어서 차리리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한 적도 많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른 지역으로 가면서 떨어져 살게 되니 매일같이 싸우던 우리가 그래도 서로를 그리워하는 애틋한 사이의 자매가 되어 있었다.
언니의 장례식을 끝내고 돌아와서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퇴근하고 오면 가방만 벗어던지고 소파에 누워 기절한 듯 두어 시간을 자고 일어났다. 그래야 씻을 기운이라도 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잠에 들 때면 울고 또 울었다. 새벽에는 울면서 깬 적도 허다했다.
언니를 보내고는 자책하고 후회하고 많이 아팠다.
시간이 지나서 조금은 무뎌진 것 같지만 가슴 저 멀리 묻어 놓은 아픔은 이따금씩-오늘처럼 갑자기 나를 후벼 파고 간다.
언니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내가 미워서
세상 사람들한테 다 다정하게 하면서 장작 언니한텐 따뜻한 말 한마디 못해서
수의를 입고 누워 있는 언니를 마지막으로 한 번 어루만져주지 못해서
희귀병이 생긴 것도 비통한데 서른아홉에 언니 생이 끝난 게 원통해서 아팠다.
나는 아파했고 지금도 아프다. 그래도 내색하지도 않고, 출근하고, 밥도 잘 먹고, 우리 가족과 세상을 사랑하려고 한다.
나는 그렇게 남몰래 아픔을 감추고 아무 일도, 어떤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살아가고 있다.
저마다 아픔을 묻어놓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어른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