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엄마 아빠 두 사람의 만남은 곧 나와 우리 언니들의 역사적인 시작점일 것이다.
엄마는 열일곱, 아빠는 엄마보다 아홉 살이 많은 스물여섯에 두 분은 결혼을 했다.
아빠 집에 땅도 몇 마지기가 있고 그 동네에서 나름 잘 산다는 중매 아저씨의 말에 폭삭 속은 외할아버지는 딸을 시집보내기로 하셨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빠는 가난한 집에 동생만 여덟 인 대가족의 장남이었고, 효자였고, 가장이었다.
할아버지는 글 쓰시는 한량에, 한 성격 하는 대단한 할머니까지 연애결혼도 아니고 중매로 결혼한 것치고는 엄마는 시집을 잘 못 온 것 같다.
넉넉했던 외갓집에서 살다가 하루아침에 딸린 식솔 많고 매일 떼거리가 없어 걱정인 가난한 집으로 뚝 떨어진 엄마는 얼마나 당황하셨을까. 고작 열입곱살에 시집이라는 걸 와서 그것도 몇 번 만났을 뿐인 남자를 뭘 믿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얼마나 막막하고 혼란스러우셨을까.
아빠는 그때로 보면 나이가 많이 찼는데도 결혼을 못한 총각이었으니 아홉 살이나 어린데 얼굴은 또 희고 말간 엄마가 아주 예뻐 보이셨을 것 같다. 쑥스러운 아빠 표정이 상상되는 지금, 아빠가 살아계셨다면 엄마를 처음 봤을 때 어땠는지 너무 물어보고 싶다.
아빠가 계속되는 출산으로 몸이 축 났을 엄마를 걱정해서 없는 살림에 흑염소 두 재를 지어 온 것은 엄마가 지금까지도 몇 번이나 자랑하신다. 근데 한 재는 잘 먹었는데 못마땅하게 여긴 할머니가 나머지 한 재를 내다 버리셔서 그만 다 먹지 못했다는 이야기까지.
아마 두고두고 들어 드려야 할 엄마가 사랑받은 이야기. 아들 낳으려고 하다 딸만 열 명을 낳았다고 하지만... 사실 두 분 금슬이 좋으셨던 건 아닐까?!
엄마는 아빠의 영정사진을 고이 보관해 두셨다가 한 번씩 꺼내보신다고 했다. 작년 백중기도 때 절에 다니는 큰언니가 기도드리겠다고 아빠의 영정사진을 가져갔다. 엄마한테는 기도드리고 태운다는 말을 안 하셨나 보다.
어느 날 엄마가 "아빠 영정사진이 잘 있나 절에 한번 가보자." 하셔서 다음에 가보자고 대충 대답하고 말았지만 덜컹했다. 그리고는 "내내 있다가 아빠 사진이 없으니까 영 허전하다." 하시는데 아빠를 찾는 엄마를 보니 두 사람의 사랑이 아직도 너무 따뜻했다.
엄마 아빠가 표현이 많으시거나 누가 봐도 잉꼬부부는 아니셨지만, 저녁 밥상에서 엄마와 아빠는 대화를 많이 하셨고 엄마의 말에 아빠는 많이 웃으셨다. 그리고 엄마는 입이 짧은 아빠를 위해 아침과 점심 두 끼를 밥으로 먹었으니 물리지 않게 저녁은 엄마의 특기 칼국수, 만둣국, 김치죽같이 특식을 만들어 주셨다.
또 아빠가 고등어조림을 좋아해서 자주 먹었는데 언젠가 tv에서 봤던 것처럼 정말로! 고등어 몸통은 아빠, 꼬리는 나랑 언니, 머리는 엄마가 드셨다.(지금은 무조건 몸통은 엄마)
아빠가 일을 일찍 마친 날이면 언니와 나를 데리고 강에 물고기를 잡으로 갔다. 아빠는 큰 망치와 족대를 들고 언니와 나는 신나게 수경과 바구니를 챙겼다. 강물은 깨끗했고 우리는 행복했다. 아빠가 적당한 크기의 바위를 망치로 두어 번 때리면 그 아래에서 언니가 족대를 대고 기절해서 나오는 물고기를 잡는 식이었다. 나는 바위를 뒤집어가며 다슬기를 잡다가 언니가 많이 잡았다고 소리치면 가서 구경도 했다.
우리는 깔깔 소리 내어 웃다가 물고기가 도망갈까 봐 조용히 하다가 꽤 잡았을 때쯤 집으로 돌아갔다. 엄마는 물고기를 손질해서 아빠가 좋아하는 얼큰한 맛으로 매운탕을 끓여 주셨다. 가족 모두가 마음도, 배도 푸근해지는 저녁을 먹은 날이었다.
깊고 깊은 추운 겨울이 되면 매일 밤마다 꺼내 먹은 사과 두 개. 엄마 아빠 언니 나 이렇게 네 명이 앉아서 한 사람이 반쪽씩 나눠먹었던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사과박스가 나무궤짝으로 되어 있었던 시절 점점 줄어드는 사과가 그렇게도 서운했다.
사과보다 사과 반쪽을 함께 먹는 그 순간이 사라질까 봐 싫었다. "아빠! 사과가 이제 몇 개 없어." 하면 아빠는 웃으면서 "다 먹으면 또 사 먹으면 되지." 하셨다. 그 대화가 그리고 속으로 안도했던 내가 생생히 기억난다.
장성한 언니들은 도시로 떠나고 남은 우리 네 명의 가족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엄마 아빠 두 분의 사이가 좋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러는 싸우시는 날도 있었지만.
애순이와 관식이처럼 엄마 아빠는 서로 사랑하셨고 기꺼이 헌신하셨다. 자식들을 끔찍이도 아껴주셨고 부모의 정을 느끼도록 따뜻하고 다정하게 키워주셨다.
엄마 아빠 이야기를 쓰는 내내 행복했던 기억이 떠올라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계속 웃음이 번졌다.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
"엄마 아빠 막내딸로 태어나서 너무 행복해."
라고 꼭 전해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