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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야 Dec 08. 2018

내 삶과 내가 멀어지지 않도록

연극 무대에서 내려온 다음은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 

회사일을 할 때, 업무에 나를 맞춰야 하는지 아니면 내 스타일대로 하는 것이 먼저인지 혼동되는 순간이 있다. 마치 연극 무대에서 어떤 배역을 연기할 때, 내 스타일대로 배역을 표현하는 것이 먼저인지, 개성 표현보다 배역에 충실한 표현을 해 내는 것이 중요한 것인지 고민되는 것처럼 말이다. 


직장 생활 = Role Play

직장 생활은 "Role Play"라고 생각했다. 회사라는 무대로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주어진 배역에 어울리는 충실한 연기를 하면 된다고. 퇴근하고 주말이 오면 다시 본연의 나로 돌아오는 것이 일상적인 직장인 Life라고 말이다. 이 생각은 꽤나 오랫동안 나의 규범으로 자리 잡았다. 대본대로 연기하는 배우와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회사도 무대의 일종으로 생각했다. 상사의 요청사항, 동료의 행동 방식과 기대 수준, 기업 문화에 맞춰서 생활하면 되는 또 다른 무대처럼 말이다. 그렇게 하면 관객의 갈채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덧붙여져서, 스스로의 규범은 꽤나 단단해졌다.  


심리적 도피를 한 것일지도

"Role Play"를 한다고 생각하니 심리적으로 편안해진다. 때로는 조직이 요구하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였거나, 주변에서 질책을 받거나, 좋지 않은 평가를 받거나, 또는 스스로 업무에 대하여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이건 본래의 내가 아니야.. 난 출근해서 연기를 하고 있는 배우일 뿐'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으니. 일종의 도피처이자 안식처라고 할까? 반대의 경우도 있다. 잘해서 칭찬을 받았을 때, 좋은 평가를 받았을 때도 그 공로가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아닌, 그 배우에게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속이 쓰릴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마음의 중도를 유지하는 데는 좋은 컨트롤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내 삶이 나와 멀어질 때

그러다, 정혜신 님이 쓰신 "당신이 옳다"를 일다가 문득 각성처럼 와 닿은 문구. 

- "내 삶이 나와 멀어질수록 위험하다. '나'가 흐려지면 사람은 반드시 병든다. 자기성이 소거된 채 부모의 기대나 사회적 역할, 가치 등에 전적으로 기대어 살아가던 사람은 절대적 의존 상태이던 그 부모나 배우자와 이별하거나 절대적인 내 역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일이 없어지거나 그 가치가 빛을 잃을 때 공황발작을 경험할 수 있다. 예견된 수순이다"- 


삶은 나를 표현하는 과정, 용기가 필요해

용기가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나를 나답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단지 용기가 부족했을 뿐이데, Role Play를 한답시고 배역 뒤에 비겁하게 숨으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본다. 삶은 나를 표현하는 과정인 줄 알면서도 남의 삶을 대신 살려고 했다면, 마음이 충만하지 못했던 이유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대에서 내려올 때 관객을 바라보지 말고, 내 가슴에 대고 용기를 불어넣을 필요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스스로의 규범도 이제는 천천히 바꿀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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