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말보다 마음이 먼저였던 시간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이 어느덧 제법 쌓였다.
무발화 아이, 말은 해도 요구 한 마디 하기 어려운 아이, 눈은 마주치지만 마음은 멀게만 느껴졌던 아이들. 내가 주로 만나는 친구들은 대부분 ABA를 이제 막 시작한, 아직 말보다 행동으로 세상을 표현하는 아이들이다.
하지만 가끔, 유난히 말을 잘하는 아이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중 하나는 고기능 자폐스펙트럼 친구였다. 핑퐁처럼 말을 주고받는 ‘인트라버벌’이 가능한 아이.
“오늘 기분 어때?”
“좋아요!”
“유치원 다녀와서 뭐해?”
“형이랑 놀아요. 오늘은 태권도는 안 갔어요.”
그 친구는 정해진 말이 아닌, 자신의 생각을 담아 이야기했다.
내가 늘 만나던, 대답을 외워야만 했던 아이들과는 또 다른 세계였다.
한 번은 자신이 미국을 다녀왔다며 들뜬 얼굴로 이야기하더라.
“거기서 누구 만났어요. 친구랑 놀았고요.”
그리고는 블록으로 사람을 만들고, 그들에게 이름을 붙였다.
“얘는 미국! 얘는 프랑스!”
아이의 상상은 국경을 넘고 있었다.
내가 미국에 가본 적이 없다고 하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왜요? 왜 안 가봤어요?”
“선생님은 친구들이랑 수업해야 해서 못 갔어.”
“그럼 어디 갔어요?”
“일본 정도?”
“엥? 진짜 가깝네요?”
그 말에 웃음이 터졌지만, 문득 대화가 되는 그 순간이 얼마나 반가운 일이었는지도 함께 느껴졌다.
물론, 이 아이도 항상 말을 잘하는 건 아니었다. 자신이 어려워하는 질문 앞에서는 말문이 닫혔고, 가끔은 “너무 어려워요, 하기 싫어요”라며 화를 내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연습했다.
“쉬고 싶어요.”
“조금만 쉴래요.”
아이의 감정에 말이라는 옷을 입히는 연습. 말을 잘해도 감정은 또 다른 언어였으니까.
또 다른 아이도 있었다. 한 살 어렸지만, 말은 정말 조리 있게 했다. 하지만 이 친구는 ‘자기가 말하고 싶을 때만’ 했다. 상호작용이라기보다는 독백에 가까운 말들이었다.
어른과는 대화가 되는데, 친구와는 잘되지 않았다. 노는 법도 몰랐다. 그래서 책이 없으면 초코송이를 먹으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곤 했다.
글을 몰랐지만, ‘곰곰이’ 책은 다 외웠다.
“혼자 읽고 있어?”
물어봤더니, 어느새 책의 뒷부분까지 술술 말해주었다. 그때 알았다.
이 친구는 좋아하는 문장을 모두 마음에 새겨두었구나.
글이 아니라 마음으로 먼저 외운 친구였다.
이 두 아이를 함께 붙여서 사회성 수업을 해본 적 있다. 도서관 놀이, 병원놀이, 그리고 그날은 아이스크림 가게 놀이.
“어서오세요~ 아이스크림 가게입니다! 무엇을 드릴까요?”
교사 둘이 시범을 보이고, 역할을 나누려 했더니 둘 다 점원을 하고 싶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카드를 긁고 싶어서.
점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
그 순간, 역할극은 양보와 기다림의 연습장이 되었다. 한 명을 먼저 시켜주면, 다른 아이가 서럽게 울고, 또 그 아이를 세우면 또 다른 아이가 울고. 그날의 수업은 ‘카드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울다가 웃다가…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이야기를 쓰고 보니 나는 아이들이 말하는 모습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문장을 만들고,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의 마음을 말로 꺼내놓는 그 순간을. 이번 이야기엔 슬픈 장면도, 눈물 나는 순간도 없다.
말 잘하는 아이들과 함께한, 그저 평범한 하루.
하지만 그 하루가 내 마음을 오래도록 웃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