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
투명한 유리창에 미간을 지긋이 대었다. 어제 찍어놓은 내 손자국 위에 두 손을 맞댄다. 그러면 눈을 맞출 수 있다. 작은 네모칸 안에서 너는 오늘도 말한다. 나를 데려가 달라고. 너의 품에 폭 안기고만 싶다고. 그리고 오늘, 너를 작은 내 품에 안았다. 움직임에 따라 부드럽게 빛나는 회색빛 털, 반짝이는 겨울밤을 닮은 듯한 두 눈, 이따금 내 팔을 간지럽히는 꼬리. 너를 품기 위해 나의 세상은 더 넓어졌다. 너의 이름은 세리.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이름이다. 세리와 모든 시간을 함께하고 싶었다. 오래도록 바라만 봤던 네가 내 곁에 있다니. 문득 벅차 오는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세리는 나와 많이 달랐다. 나의 세상은 낮이었고, 너의 세상은 밤이었다. 밤의 고개가 깊어질 쯤이면, 나는 어김없이 잠에 든다. 나른한 햇볕이 들 때면, 너는 곱게 포갠 두 손 위에 고개를 묻었다. 나는 그런 너를 바라만 볼뿐이었다. 그 평온을 해치고 싶지 않았다. 너의 밤을 함께하고 싶었다. 졸음쯤이야. 이겨낼 수 있다. 이겨낼 수 있는데... 이겨낼 수 없다. 괜한 핑계를 찾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를 가고, 태권도 학원에서 돌아와 브롤스타즈 게임을 하고 있으면 영어 선생님의 초인종이 울리는 걸. 잠깐, 너는 내내 집에서만 있었잖아. 아니다. 이건 세리의 잘못이 아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
세리를 안고 누웠다. 자장자장. 쓰담쓰담. 이렇게 하면 우린 같은 밤을 보낼 수 있을 거야. 내 품에 들어오렴. 내가 세리를 안을수록, 세리는 발버둥 쳤다. 더 세게 끌어안았다. 결국 세리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나를 상처 냈다. 서러웠다. 너를 안으려 할수록,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바라보던 그때보다 더 멀어져 갔다. 터질듯한 마음을 뒤로하고 도망치는 세리가 미웠다. 볼에 눈물자국이 남았지만, 나를 안아주는 건 엄마가 이틀 전 생일선물로 사준 카봇 이불뿐이었다.
그런 세리가 밉지만, 사랑한다. 이런 내 마음이 어려워서 그냥 두기로 한다. 나는 나의 세상을, 너는 너의 세상을 나름대로 살아간다. 새로 나온 셜록 만화책을 갖게 되었다. 바닥에 철썩 엎드려 보는 만화책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왼쪽 옆구리가 따뜻해진다. 세리다. 내 등에 작은 이마를 파묻고 졸린 듯 천천히 고양이 세수를 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행복하다. 책을 덮곤 오래도록, 바라본다.
너는 나의 시간을 사랑하는구나. 고요하게 바라봤던 널, 나는 미처 보지 못했다. 그런 네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조심스레 회색빛 털 위에 손을 올려본다. 너는 아직도 어리기만 한 나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눈을 깜빡인다. 함께 존재하는 우리의 시간이 좋다. 꼭 같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네가 좋다.
오늘은 조금 더 편안하게. 우리의 밤이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