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2
사랑이 목을 매고 축 늘어졌다. 내 세상에 불이 꺼졌다. 모든 시선이 흑백으로 전환됐다. 심장이 발등을 타고 떨어졌다. 도무지 모르겠다. 우리는 각자로 온전하게 존재하지 않았던가. 이토록 갑작스레 나를 떠나간다고? 늘 내 옆에서 어여삐 웃던 네가 왜. 세상이 너무 어두워서 불을 켤 스위치가 필요했다. 스위치를 찾을 힘이 없다. 눈물이 나지 않는다. 집에 가면 네가 있을 텐데. 너는 그곳에 이미 없었다. 너의 죽음으로 나의 영혼의 죽음이 살아났다. 나는 너로 정의되는 사람이니. 발톱까지 비틀대는 걸음 끝에 잠을 청해 본다.
노란색이다. 우리가 '노란 집'이라 부르던 그 카페. 우리가 자주 가던 곳이다. 창가에 네가 보인다. 어딘가 멍하고 쓸쓸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나는 그런 네 표정을 귀여워했다. 너를 만나고 싶어 달려갔다. 너는 여느 때처럼 수줍게 웃으며 인사했다. 서둘러 너의 손을 잡는다. 온기가 없다. 꿈이다. 꿈이라도 괜찮다. 그녀의 선택의 이유를 알고 싶었다. 조금만 더, 오래 있고 싶었다. 그렇게 매일 밤, 깊은 잠을 노력했다. 어설픈 밤은 곧 낮의 영역을 기꺼이 차지하고 말았다.
너는 밝고 귀여운 사람이다. 외로움과는 거리가 먼 사람. 나는 그렇게 너를 정의했다. 우리가 늘 걷던 산책길에서 묻는다. "왜 그랬어?" "뭘?" 멈춰 서서 눈을 바라본다. "왜 죽은 거냐고." 담담히. 나를 빤히 바라본다. 이내 시선과 발걸음을 앞으로 옮기며 입을 열었다. "외로워서." "나 때문에? 내가 널 그렇게 외롭게 했니?"라는 무른 가시가 돋친 내 말에 눈썹을 씰룩이며 웃었다. "아니. 외로움은 사랑과는 달라."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말하는 네 모습에 순간의 화가 울컥했다. 그러자 너는 더 일정한 담담함으로 말했다. "죽을 땐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삶에 저항하겠단 거야."
오늘은 너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너의 가족들은 네가 아닌 너의 그 잘난 오빠에게 관심이 있었다. 너의 친구들은 각자의 가족이 생겼고, 서로의 안부를 물을만한 여유는 없었다. 그러한 외로움은 켜켜이 쌓여가고 있었다. 마음의 병이 깊어지는 사이, 나는 널 눈치채지 못했다. 그동안 너를 잘못 정의 내렸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너에게 나는 어떤 존재였을까. 나의 전부였던 너인데. 꿈에서 너를 다시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너는 너무도 선명했기에, 그리고 나를 찾지 않았기에. 색이 보이는 유일한 공간인 꿈에서조차.
이날도 어김없이 문구점 계단을 내려간다. 펜을 사 모으는 게 유일한 취미였다. 또 검은색이네. 늘 다른 볼펜을 모았지만, 색은 늘 한 가지였다. 그 이유가 문득 궁금해 물었던 적이 있다. "왜 검은색만 사?" 같은 대답은 하기 싫어하는 그녀였지만 좋아하는 질문이니 용서해준다는 그런 표정으로 대답했다. "다른 색들이 검은색 망치잖아. 잘 안 보여." 그녀가 검은색이었다. 점점 검은색을 주변으로 한 다른 색들이 넘쳐나는 사실이 그녀를 괴롭게 했구나.
잠에 들지 않으려 노력했다. 죄어드는 마음을 쥐어뜯었다. 그럼에도 어김없이 눈을 떠보면 환한 꿈속이었다. 네가 보이지 않는다. 꿈을 꿀 이유가 사라졌다. 외로움이 나를 감싸고 억죈다. 네가 없는 세상은 나를 정의할 수 없는 텅 빈 공간이다. 담담하게 두 손으로 밧줄을 잡았다. 눈을 감았다. 탁. 꿈속의 스위치가 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