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3
'어른들을 위한 동영상'. 오늘도 A는 이 동영상 카테고리를 클릭한다. A는 빨리 어른스런 어른이 되고 싶다. 성숙한 어른이라 함은, 언제 폭풍 같은 위기가 닥칠 줄 모르는 이 험난한 세상에서 가장 평온하고 슬기로운 태도로 일관하는 것이며, 방심하는 사이 튀어나올 어린아이의 본성을 너그럽게 절제할 줄 아는 것이다. '가성비'는 더 이상 한낱 사용되는 물건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들의 인생에도 가성비가 적용된다. 초단위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유한한 인간에게 시행착오는 사치다! 그리하여 나이를 먹고 싶은 청소년과 나이를 먹어봤지만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들의 베스트셀러 동영상. 인생 꿀팁! '어른들을 위한 동영상'이 절찬리 판매 중이다.
동영상은 총 5개 챕터로 나눠져 있다.
chapter 1. 뭐가 하고 싶은지 모르겠을 때
chapter 2.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chapter 3. 도망치고 싶을 때
chapter 4.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될 때
chapter 5.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A는 이제 챕터 3을 볼 차례다. 잠깐. A는 청년들의 종착점이라 할 수 있는 취준생이다. 왜 종착점이냐고? 취준생 청년은 있어도 대리 청년, 과장 청년은 없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취준생은 아프다. 고달프다. 동영상을 플레이한다.
"도망치고 싶으세요? 도망처! 용기 있는 자만이 도망칠 수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 지금까지 얼마나 순응하며 살았습니까. 유치원,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지금 하는 일들이 괴롭고 힘들다면 과감하게, 그냥 도망치ㅅ.." 일시 정지. A는 단호한 어투에 크나큰 위로를 얻던 도중 중요한 현실을 깨닫는다. 그렇다. A는 도망칠 곳이 없다. 지갑 속 자신의 이름이 적힌 명함이 없으며 그 흔한 동아리조차 없다. 동거인도 없는 독립인 2년 차다. '그럼 난 어디로 도망쳐야 하지? 근데 도망치고 싶은데.' A에게 취준생을 그만두는 것은 곧 취업을 그만두는 것이며, 이는 곧 '청년'으로만 젊은 시절을 보내겠다는 일종의 포기 선언이다.
도망쳐도 괜찮다는 이 무책임한 말을 최대한 있어 보이고 그럴듯하게 반복하는 것이 과연 슬기로운 어른이 되기 위한 조언인가? 내용에 도태되었다는 사실에 좌절한 A는 다수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는 위기감과 분노로 포털사이트 메일창을 열었다.
이 몹쓸 비디오를 만든 이에게 말의 모순이 있음을 자각시켜줘야겠다는 꼬인 마음에서였다. 도망치지 못하는 도망 희망자는 그렇게 왜 자신이 이 동영상에 도움을 받지 못했는지 장문으로 분노를 서술했다. 이틀 뒤, 그의 귀찮음을 이겨낸 장문이 무색한 단문의 답장이 돌아왔다.
RE : 도망칠 곳이 없는 자는 도망칠 자격이 없습니다.
이런 썩을... 희망을 가져버리자. 그는 도망칠 곳을 향해 도망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