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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온도 측정기

소설 4

by 윤수빈 Your Celine


[ 온도에 예민한 사람들. 손을 잡는 게 낯선 순간 꼭 하는 말이 있지. "어머! 손이 따뜻하시네요." "손이 차요." 그 날의 온도에 따라 적당한 옷차림들을 표로 정리하기도 했어. 이를테면 28도가 넘어가면 민소매, 반팔. 11도에서 9도는 트렌치코트, 니트. 4도보다 추운 날씨라면 히트텍과 목도리는 필수지. 성격은 예외겠어? '걔는 좀 차가운 스타일이야.' '따뜻한 사람이야.' 가끔, 그렇게 예민한 사람들이 실수를 하기도 해. 카페에 당당히 들어서곤 대뜸,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세요." 한다니까? 본인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그냥 눈만 껌뻑이고 있는거야.

...이 얘길 왜 했지?


아무튼 뭐. 이 말을 왜 하냐고? 기후변화 대응팀 연구원으로 일한 지도 5년이잖냐 내가. 이런 쉽게 판단하는 온도는 너무 지루해. 나는 그딴 게 궁금한 게 아냐. 몇 달째 아침마다 마주치는 편의점 그 여자, 나를 좋아하는 건지 질투하는 건지 헷갈리는 내 동기, 나만 보면 다짜고짜 험한 말을 내뱉는 옆집 아저씨. 그 사람들의 생각 말이야. 그 무형의 온도를 알고 싶어. ]


건너편 앉은뱅이 의자에서 심드렁하게 듣던 친구가 말한다.

"그럼 만들어. 너 똑똑하잖어. 뭐 티비에 나오잖아, 심박수 측정기, 뇌파 측정기 같은 거."


그렇게 4개월 뒤, 그의 반항 가득한 욕망에서 하찮아 보이는 기계가 탄생했다. 이름하여 '마음의 온도 측정기'. 이 기계의 기본 전제는 인간은 정온 동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출근길 아침 바삭했던 낙엽을 밟고 발등을 들썩였던 이가 퇴근길 가을의 습기와 수많은 발자국에 눅눅해진 낙엽을 밟곤 아쉬운 마음에 축 처진 어깨를 보이는 그 온도차가 어찌 정온 동물인지. 어쨌든, 모든 상황과 공기에 의해 변화해야만 하는 변온동물인 인간을 예민하게 측정해버릴 수 있는 기계가 탄생했다.


그도 수많은 인간들 중 하나라, 다수가 본인과 같이 변온동물의 온도를 알고자 하는 욕구가 있을 거라 판단했다. 그 욕구는, 그의 자본에 향한 욕구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팔자. 뭐 안 믿으면 어쩔 수 없고."

초지일관 심드렁하던 친구 놈은 기계가 눈앞에 보이자 내심 자신의 궁금증을 벗겨내는 모습이었다. "야 근데 이런 걸 누가 살까?" 이상한 거 사는 사람들 있지. 열 중 일곱은 예능 PD. 그들 사이에 이 요상한 물체에 대한 소문이 도는 순간. TV에 등장하는 순간.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그게 어떤 파장을 일고 올지.



00일 자 동화 일보 기사 중

[일주일 새 결별 커플 3200쌍 이상 증가. 우리 파혼할까요? (부제: 마음의 온도 측정기 발명자에게 정신적 피해배상 청구)]

[교도소 모범 수감자의 온도가 자원봉사자의 온도보다 높다? 형량 감소 사유될까]

온도를 증명하고자 했던 그들은 죄가 없어요. 확인할 수 없음으로써 가치로운 것들을 제가 망쳐놓았죠. 그러나 인간은 이성적인 변온동물입니다. 이 속에, 마음의 온도 측정기를 다 하나씩은 갖고 있어요. 없는 건 측정기가 아니라 확신이죠. 그 불확실한 감정을 기계로 확인해버리는 순간의 두려움을 궁금증이 이긴 겁니다. 피해배상 청구하셔도 좋습니다. 단, 여러분이 구매하신 금액만큼만 돌려드립니다. 그게 제가 만든 책임의 크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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