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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빈 Your Celine Oct 02. 2020

저장하는 순간들은 저마다 다른 색을 지닌다

나는 누구일까요


  그렇게 우리 셋은 여행을 떠났다. 생김새도, 성격도 달라도 너무 다른 탓에 걱정이 앞서지만 이미 제주도에 도착했다. 5개의 감각 중 시각에 의존하는 삶을 지향한다. 보이는 것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그 찰나의 순간을 간직하는 것은 여행의 숙명이다. 


친구 D와 F에 대해서 말해볼까 한다. 

  D는 나와 외모가 꽤 비슷하다.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는 것만으로도 다분한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도 옷 입는 스타일은 상극이다. 여행 갈 때만이라도 좀 화려하게 입으면 안 되나. 나는 평소 밝은 옷을 즐겨 입는다. 그래야 더 돋보이기도 하고, 성격도 밝아 보이지 않을까. 내가 아는 D는 한결같은 단벌신사다. 심지어 이 푸른 제주도에 놀러 오는 날에도 검정이라니. 늘 검정 검정 검정이다. 제 딴에 전문직은 검정이 멋이라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F는 우리 셋 중 가장 가볍다. 늘 그랬다. 그런 체질인가보다. 재밌는 건, 가장 가벼운 몸을 가지고 있지만 성격은 가장 느긋하다. 어디를 가던 슬로우의 미학을 유지한다. 나도 성격이 급한 편이지만, D만큼은 아니다. F와 D 둘만 있었다면 이 여행은 없었을 거다. 아 그래도 옷 스타일은 나랑 썩 비슷하다. 컬러풀해.


  남자 셋이서 여행을 떠난다면 사실 별게 없다. 먹고, 바닷가, 그리고 잠. F는 이동하는 그 모든 순간들을 천천히 간직한다. 그리고 강렬한 그 순간들을 신중히 고른다. "이 푸른 바닷바람 감성, 너무 좋지 않니?" 뭐라는 거지. 푸른색 바다, 시원한 바람 아닌가. 아무튼 F는 감성에 살고 감성에 죽는다. 

나도 여행을 다니는 모든 순간이 좋다. 그래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중요하다. 결국 기억에 남는 건 몇 개 없을 뿐이다. 나는 날씨가 가장 중요하다. 빛이 너무 강하면 눈에 잘 남지 않는다. 또 빛이 너무 없으면 껌껌한 기억뿐이다. 성격이 가장 급한 D는 많은 경험 끝에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내길 원한다. 그래도 우리 중 가장 높은 능력치를 뽐낸다. D의 주도 하에 고기 국숫집, 딱새우 횟집, 노을이 잘 보이는 서남쪽 카페, 인적이 드문 바닷가, 새별오름 같은 곳들을 쉴 새 없이 돌았다. 


  1박 2일 여행은 도착했다 하면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공항으로 돌아가는 그 길에 창밖을 바라보며 여유를 세어본다. 기억은 조작되는 것이다. 기억 버튼을 누르는 그 순간 우연히 걸리게 된 날씨, 공기, 표정들이 모여 그 당시 주변의 순간들까지 모조리 재해석한다.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고, 우리는 오늘을 살게 될 운명이니까. 같은 여행을 떠나왔지만, 우리 셋이 기억하는, 저장하는 순간들은 저마다 다른 색을 지닌다. 그 자욱들이 모였을 땐 그 현실과 가장 비슷한 감정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그래, 내 이름은 폴라로이드 카메라."

D의 이름은 Dslr.

F의 이름은 필름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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