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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빈 Your Celine Sep 20. 2020

누구에게 어떤 자취를 남겼는가

나는 누구일까요



  다시 체념한다. 친구에게 푸념한다. 감정은 비슷하고 원인은 다르다. "남자들은 왜 그러냐? 언제는 걸어 다닐 때마다 끌리는 신발 소리도 좋다더니, 또 거슬리니까 천이라도 신발에 붙이고 다니면 안 되냐고 그러대. 참나. 지는 바퀴 달린 신발 좀 신어봤다 이거냐고." 씩씩대 봐야 해결되는 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지만, 분노의 대상과는 도저히 말이 안 통한다. 돈 잘 버는 프로게이머들 사이에서 유명하면 뭐해. 나는 잘 모르는 세계이지만, 그들 사이에서는 한 번이라도 만나보고 싶은 그런 존재란다. 누구든 그를 만나면 흔들렸던 마음이 안정된다면서. 물론, 나에게도 기대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언젠가부터 편안함은 권태의 먹잇감이 되었다. 내가 재미없는 건 안다만. 이쯤 되면 그냥 내가 문제인 걸까.


  다른 이들에게 너무 좋은 말만 듣는 이라면 분명 허점이 있다. 그 장점이 가까운 존재에겐 단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는 모든 사람들을 잘 맞춰준다. 아이면 아이, 어르신이면 어르신. 대상마다 눈높이를 다르게 조절한다. 근데 왜 내 눈높이는 맞춰주지 않는 거니. 많은 사람들이 기대고 싶어 있다 간 그 자리는 고스란히 자국이 남아버렸다. 마치 사람들이 많이 만진 손잡이 위치만 닳아있는 것처럼. 이미 내 자리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뜬금없지만 일 이야기를 해볼까. 이직만 3번이다. 지금 회사는 뭐, 나름 만족하고 산다. 하도 개성 개성 하는 분위기가 유행일 땐 죄다 그게 좋은 줄만 알고 따라 했지. 두 번째 회사가 그랬다. 자유로운 복장에 다들 머리는 또 얼마나 알록달록이었는지. 그런 곳에서는 베이식이 유니크가 되어버린다. 다들 나를 보곤 한마디씩 했지. 꾸미면 예쁠 것 같다는 무례한 말들이랄까. 어쩌라는 거야. 나는 이렇게 태어난 건데. 애초에 생기발랄 왈가지껄인 니들이랑은 다른 종족이라고! 존재감만큼 점점 내 자리는 불규칙하게 사라져 갔다.


  막 이직을 마친 지금 회사는 심플하다. 나랑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고정관념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는 딱 그 정도. 고정관념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똑 부러지게 각진 나는 고정된 환경에 딱 들어맞을 때 안정감을 느끼니까. 나를 고수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더라. 갑자기 심플은 감성이래. "oo 씨, 깔끔하게 일 잘한다고 소문났어. 이번에 새로 지은 사옥 3층 건물 메인으로 발령 난다는 소문도 있던데? 우리 회사 이미지랑 잘 어울린다고." 참, 별일이 다 있다.


  아 그래서 일 얘기는 왜 했냐면. 얼마 후 정말로 나는 사옥으로 발령이 났고, 1층 커피숍을 방앗간처럼 들렸다. 매일 아침, 점심 카페에서 마주치는 그의 첫인상은 날카로웠다. 꼿꼿한 긴 다리에 좁은 허리. 그리고 좁은 어깨. 누군가에게 기댈 틈도 주지 않을 듯했다. 요즘 카페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콘셉트인가 보다. 이렇게 하면 손님들이 불편해 빨리 나가기라도 하는 걸까. 아무튼 요즘 눈길이 가는 건 사실이다. 자꾸 눈길이 간다. 편안하지 않은 것들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었나. 처음 느껴보는 호기심이랄까. 그와 있으면 허리 맡에 꼿꼿이 긴장을 주게 된다. 아무튼 그 사람이 궁금해졌다.


  친구를 찾아갔다. 말해달라가 아니고, 들어달라고. 그렇게 일방적 대화를 하다 보면 흐릿했던  모습이 점차 선명해진다. 언제는 기대고 싶은 포근한 남자가 좋다더니, 이제는 자립심을 길러줄  같은 남자가 좋단다. '한결같아야지 말이야!' 입에 달고 살던 내가. 그이를 마냥 탓하던 내가 가장 모순적이었다. 정말 모순적인 다른 사실에 문득 소름이 .

  나는 누구를 기대게 했는가. 삶이란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받는 일이다. 누구에게 어떤 자취를 남겼는가. 스스로를 돌아보는 밤이다.



"그래, 내 이름은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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