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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빈 Your Celine Sep 07. 2020

여름에 또 만나

나는 누구일까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마땅히 해낼 때 비로소 존재의 이유를 깨닫는다. 나에게 그 시간은 남들보다 짧다. 그저 여름 한철. 짧은 만큼 오래 그리고 다정히 곁을 지켜야 하는 것. 그것이 나의 존재에 대한 소명이다.


  고마워, 올해도 나를 찾아줘서. 너는 툭하면 싫증을 내는 사람이다. 그런 네 성격을 아는 나는 늘 불안하다. 올해는 더운 가을이 너의 곁을 조금 더 내어주지 않을까. 시시한 기대를 품어본다. 남들보다 조용한 성격을 좋아해 줬다. 잔잔히 일을 할 때에도, 거칠고 뜨거운 열정이 불탈 때에도 너는 늘 한결같이

"조용해서 좋아."

라고 단정 지었다. 다른 이들은 시끄럽기만 하고 주제에 자신한테 열만 낸다면서 투덜거리기도 했다. 아무래도 내 장점인가 보다. 올해도 너를 볼 수 있게 된 이유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너는 나와 많이 다른 사람이다. 가장 높은 에너지를 뿜어낼 때에도 평상시와 비슷한 떨림으로 숨 쉰다. 반면 화가 많은 당신은 원래 열이 많다며 머리를 쓸어 넘기곤 했지. 꼭 두 번씩이나. 나는 그런 네 머리칼을 넘겨주고 싶었다. 그때마다 나를 옆에 두었다. 잔잔한 내가 옆에 있으면 자신의 열이 가라앉는 것만 같은 느낌이라면서.

  그래서 여름 한 계절은 온전히 너의 곁에 있을 수 있다. 지구온난화로 여름과 겨울이 길어진다던데, 썩 나쁜 일은 아닌 듯하다.


  너는 활동적인 사람이다. 몸을 움직여야 충전된다나 뭐라나. 오늘은 친구 A와 배드민턴을 치러 나갔다. 고맙게도 날 데려갔다. 그와 주고받는 공이 잦아질수록, 너의 체온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그럴 땐 나를 비상 투입시켰다. 이젠 나도 지쳤다. 더 이상은 무리다. 오늘도 너를 따라잡지 못한다. 먼저 지쳐버리고 만 나를 너는 늘 못마땅해했지. "왜 이렇게 약해?"

  사실 나는 가만히 있을 때 충전된다. 네가 편안할 때 비로소 나는 쉴 수 있다.


  네 관심이 다른 곳으로 쏠리는 건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다.

요즘 부쩍 친해 보이는 새 친구. 김풍인지 무풍인지. 요즘 툭하면 TV에 얼굴이 나오던데. 몸집도 크고, 능력도 있는 것 같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들을 당연스레 가지고 있는 저 모습. 재수 없다. 스스로가 처참히 작아진다. 어떻게든 저 놈의 못난 부분을 찾아내야겠다. 정신승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내가 더 나은 것들을 꼬집어본다.

  저 친구는 너를 잘 모른다. 너는 손을 뻗으면 늘 옆에 필요한 게 있어야 하는 성질 급한 사람이다. 그런 너의 불같은 성격을 빠르게 맞춰줄 리가 없다. 저 큰 몸뚱이는 또 어떻고. 몸집이 작은 너에겐 내가 딱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은 오늘도 네 손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 내 이름은 선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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