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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빈 Your Celine Sep 08. 2021

길에서 번호 물어보는 사람을 싫어합니다

너무 제 스타일인데 번호 좀 주실 수 있나요?


평소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풀어보고자 한다. 

앞서 나 또한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무턱대고 다가간 적이 있다. 그 사람은 내가 대학생활 중 만난 사람들 중 가장 내 이상형에 가까웠고, 몇 번을 고민하다 안 물어보면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엄청난 용기를 내어 내 번호를 줘도 되겠냐고 물어봤다. (그 뒤로 데이트도 몇 번 했지만, 실제로 만나보니 생각과 달랐다.)


내 번호를 준 이유는 그동안 낯선 사람이 내 번호를 물어봤을 때 굉장한 불쾌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일방적으로 상대가 마음에 들어서, 연락을 주고받고 싶어 길가는 사람을 붙잡았다면 연락의 선택권 정도는 상대에게 주는 게 맞지 않을까? 마음에 들어서 상대에게 용기를 낸 건 가상하지만, 그 사람에게는 일단 예상치 못한 당황스러운 상황이다. 나는 그 상황이 설렘보다는 미안함에 가까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혼자 번호를 물어봤다는 기특함에 취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돌아가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 사람이 진심으로 이상형이라서, 떨리는 마음을 붙잡고 용기 내어 물어본 상황이라면 모르겠다. 그런 진심은 피부로 느껴진다. 그러나 내 경험상 번호를 물어보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물어보는 거다. 약간의 습관이랄까. 어쩌면 직업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내가 경계하는 눈빛을 보내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아 절대 이상한 사람은 아니고요.." 자신에 대한 변명보다 그렇게 보는 감정을 헤아리는 게 먼저 아닐까. 단순히 얼굴이나 몸매 같은 외적인 부분을 몇 초 만에 판단 혹은 평가한 후에,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번호를 달라고 말한다니. 상당히 불쾌했다. 나에 대해서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안면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길에서 번호를 물어보는 사람들의 의미가 "잠깐 보니 그쪽의 외모가 괜찮은 스타일 같은데, 내가 연락 좀 해봐도 될까?" 정도의 무례하고 가볍게 느껴진다. 자신이 갑작스럽게 말을 걸어도 될 정도의 쉬운 여자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심지어는 내가 다리가 부러져서 목발을 짚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툭툭 치더니, 걸어가는 게 귀여워서 번호를 물어보고 싶다는 미x 사람이 있었다. 그밖에 아저씨들도 있었다. 

며칠 전 동생은 지하철역에서 어떤 사람이 휴대폰 메모장에 번호를 물어보는 멘트를 적어놓고 읽었다고 한다. 그냥 아무나 붙잡고 읽는 거다. 


코로나로 모두가 마스크를 쓰는 이 시국에 번호를 물어보는 건 정말 기도 안 찬다. 얼굴도 안 보이는 데 번호를 물어보는 건 무슨 심리인지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이제는 길에서 번호를 물어보려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다면 일단 시선부터 경계하게 된다. 


여성들은 낯선 남자가 말을 걸면 먼저 두려운 감정이 든다.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고 번호까지 달라고 하는 일은 실례가 될 수 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번호를 물어보는 대상이 여성이든 남성이든, 실례를 감수하고도 좋은 감정으로 연락을 주고받길 원한다면 자신의 번호를 주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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