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할아버지의 네잎클로버
잎이 세 개 달린 풀더미에 코를 박고 행운을 찾는 그런 비효율적인 일을 하지 않은지 오래였다. 그도 그런 것이, 네잎클로버라는 단어에 순수한 염원을 담아본 마지막 경험이 언젠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어른들은 이런 유치한 것들에 감동한다. 그들에게 유치함은 아련함을 감추기 위한 얄팍한 속임수니까.
네잎클로버의 의미는 행운, 세잎클로버의 의미는 행복이라고 한다. 우리는 일부러 "행복을 밟고 행운을 찾겠다고?"라는 냉소적인 문장을 내뱉으며 둔함을 택한 게 아니니 스스로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가져도 된다. 얼마 전 공원을 걷다 무심코 바닥에 흐드러진 세잎클로버들이 눈에 밟혔다. 사실, 보통의 공원에는 잔디밭보다 세잎클로버밭이 더 많다. '이 중에 네잎클로버도 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그 풀밭을 뚜벅뚜벅 걸어온 후였다.
"어렸을 때는 공원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세잎클로버 들여다보고 그랬는데. 네잎클로버 누가 먼저 찾나 내기하면서. 그치?"
"응. 그땐 남는 게 시간이니까. 그런 게 너무 재밌었잖아. "
"다 커서는 그래본 적이 없네."
네잎클로버를 지나오며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그렇게 며칠 뒤, 3호선 지하철에 올라탔다. 가장 가장자리 빈 좌석에 앉았다. 몸의 옆면을 기댈 수 있는 맨 마지막 자리는 공개적인 지하철에서 유일한 아늑함을 느낄 수 있는 장소다. 다음 역은 탑승객이 많아 빈자리가 금세 채워졌다. 가장 마지막에 탑승한 두세 명은 선채로 손잡이를 잡았다. 나는 여느 때처럼 책을 펼쳤다. 이동하며 책을 볼 때 가장 집중도가 높다. 그러던 중 흐릿한 앞쪽 시야에 한 할아버지가 들어왔다.
노약자석에 앉아계시던 허름한 차림의 할아버지는 천천히 걸어가 나의 건너편 자리 여자 앞에 멈춰 섰다. 그러더니 뭔가를 여자에게 내밀었다. 여자는 펑퍼짐한 청바지에 꽉 끼는 가죽 단화를 신고 다리를 꼰 채 네이비색 헤드셋을 끼고 있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할아버지를 경계하는 듯 몇 번 흘끔 쳐다보더니, 할아버지가 내민 무언가를 보고 손을 내저었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여자에게 한번 더 내밀었다. 무언가 말을 하는듯했지만 공업용 마스크처럼 두꺼운 플라스틱 마스크 탓에 정확한 내용이 들리지 않았다. 여자는 귀찮은 듯 헤드셋 한쪽을 뺐다. "네?" 다시 한번 손에 든 작은 것을 내밀며 여자에게 어떠한 말을 하는 할아버지였다. 이번에도 여자는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손을 내저었다. 주춤하던 할아버지는 이내 몸을 돌렸다.
그 광경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지하철이야 워낙 다양한 사람들과 사건이 오고 가는 곳이니, 낯선 이가 말을 거는 모습은 대개 동정심을 자극하는 자선행위일 것이라고 판단하고 관심을 주지 않는다. 사실 궁금한 마음에 소심한 관심을 가졌던 나조차도 그렇게 생각했다. 내밀었던 작은 건 아마 껌이 아닐까 예상했다. 그때 자리로 돌아가려던 할아버지가 다시 몸을 돌려 나에게 다가왔다. 가진 현금이 없다는 생각과 자연스럽게 거절할 방법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할아버지가 내민 건 뜻밖이었다. 네잎클로버. 서툴게 코팅한 네잎클로버였다. 손에 꼭 쥐어서인지 잡았던 부분은 울어있었다. 다른 손에는 비슷한 네잎클로버들이 서너 개 정도 들려있었다. 생각지 못한 할아버지와 네잎클로버의 등장에 머뭇거리는 나에게도 할아버지는 다시 한번 받으라는 몸짓을 보이셨다.
"아.. 네.. 감사합니ㄷ.." 덤덤하게 네잎클로버를 주시고는 노약자석에 앉으셨다. 판매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제대로 감사인사를 하지 못한 게 어색함으로 남아 옆쪽의 할아버지를 쳐다보지도 못한 채 가만히 손에 들려있는 네잎클로버를 한참 바라볼 뿐이었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네잎클로버가 아니었다. 이파리는 거뭇한 부분이 있었고 코팅지는 삐뚤빼뚤하게 잘려있었다. 어딜 봐도 누군가 직접 만든 듯했다. 그래서 더 신기했다. 어렸을 적 간절히 헤매다 찾은 네잎클로버를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문구점에서 코팅을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내가 받은 건 네잎클로버를 찾던 그 마음과 시간이었다. 할아버지는 어떤 마음으로 낯선 이에게 네잎클로버를 건넸을까.
생각지 못한 선물이 지루한 퇴근길에 울렁임을 만들었다. 이 네잎클로버에 소원을 빌면 정말 이뤄지기라도 할 것 같은 묘한 기분까지 들 정도였다. 마침 책갈피가 없었다. 새로 생긴 책갈피를 페이지 사이에 깊이 눌러 끼우며 생각했다.
'좋다. 곧 행운이 올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