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수빈 Your Celine Mar 10. 2022

아이쿠, 코로나에 걸려버렸네

7일간의 방콕 여행

그렇다. 코로나에 확진되었다. 1년 전에 일어난 일이었더라면 지금처럼 평온하진 않았을 거다. 코로나에 걸리지 않으면 친구가 없는 거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감기보다 흔한 질병이 되어버렸다. 처음에 양성 반응을 보고 당황스럽긴 했지만, 더 당황스러운 건 공원 한 바퀴를 감싼 PCR 검사 대기 줄이었다. 그 모습에 오히려 마음이 진정되는 무시무시한 군중심리다.


아무리 확진율이 높아진다 한들, 사실 내가 걸리지 않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두려움일 뿐이었다. 바이러스란게 눈에 보이지 않으니 방역에 신경을 쓴다고 하지만 확신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일주일 전 저녁 찬바람을 쐰 후, 갑작스레 목이 간질간질하기 시작해 다음날 바로 이비인후과로 향했다. 신속항원 검사를 해보니 음성 반응이 나왔고, 어제 날이 추워 목감기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병원은 감기 증상 환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고도 상태가 점점 악화되자, 이틀 뒤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마음이 편하고자 다시 한번 신속항원을 했는데 빨간 두줄이 나왔다. 설마 했지만 진짜였다. 어디서 옮겼는지 알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조금 억울한 마음과 당황스러운 마음이었지만, 병원에서는 근처 PCR 검사소로 가라며 건조하게 안내했다. 분명 하루에 한두 번 있는 일은 아닌 모습이었다. PCR 검사소에 가자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오후 대기 줄까지 끝없이 길고 긴 대기줄이 이어져있었다. 결국 다른 임시 검사소로 옮겨갔다.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밀려있는 대기줄 사람들의 거리두기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뭉침 현상이 발생했다. 세명의 자원봉사자분들은 애를 먹었다. 서로 예민해지긴 마찬가지였다. "일을 왜 이렇게 하냐"라는 기다림에 지친 시민들과 "건강 생각해서 그러는데 왜 뭐라 그러냐"라는 봉사자분들의 신경 섞인 언쟁이 오고 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서로 힘든 상황임을 안다는 듯 감정을 누르는 모습이었다. 


여지없이 양성 판정을 받고, 방에서 격리 생활이 시작되었다. 밥상을 따로 차려 먹고, 가족들이 없는 시간에 화장실을 이용했다. 답답할 땐 창문을 열고 바깥공기를 콧구멍으로 들이마셨다. 방안에 나름 큼직한 창문이 있어 참 다행이다. 이곳은 나의 작은 집이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함께 살고 있지만 벽간 소음을 감당해야 하는 1주일이었다. 소통은 문틈 가까이 얼굴을 두고 이야기하다 이내 문자로 바뀌었다. 엄마의 애정 섞인 잔소리도 문자로 받았다. 이렇게 긴 문자는 오랜만이었다.


확진 소식을 들은 친구들도 걱정을 하는 모습이지만 '너도 확진이냐'라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내가 격리 중에 확진이 되는 친구도 있었다. 요즘은 너도 나도 걸리다 보니 막연한 걱정보단 "이번 기회에 7일 휴가 즐겨~"라는 응원을 보냈다. 정말 그런 생각도 들었다. 코로나가 준 일주일간의 느슨한 시간이었다. 병세를 완화시키겠다는 목적으로 눈이 떠질 때까지 잠을 자고, 최대한 움직이지 않았다. 꽤 행복했다. 3일쯤 지났을 때였나. 이상하게 답답하지 않고 바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리랜서와 취준생의 삶이란, 원체 방에서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책장을 넘기는 일이었다. 격리 기간이 아니어도 셀프 격리를 권장하는 삶이었다. 






증상은 둘째 날까지는 감기몸살이 점점 심해지는 듯했다. 삼일차부터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는데, 아프다기보다는 콧물 가래 기침 증상과 함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전화 통화를 할 수가 없었다. 아, 7일간의 묵언수행이 조금 더 맞는 표현인듯하다. 5일 차부터는 점차 나아지기 시작했다. 다만 전날 엄마가 해준 닭볶음탕이 맛있다며 "미각을 잃어버린다던데 나는 입맛이 너무 좋아"라고 까불었던 게 화근이었는지 정확히 5일 차에 소불고기가 적당히 부드러운 덩어리를 씹는 느낌으로만 느껴졌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고 김치에 코를 한껏 가져다댔지만 아무 냄새가 나지 않았다. 미각과 후각이 사라진 채 촉각만 남은 이 요상한 느낌. 


앞으로 또 겪고 싶지 않다. 어떤 음식을 입에 넣어도 온도와 촉각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밥은 찰기가 있고 따뜻했다. 김치는 차갑고 질퍽한 듯 아삭했다. 짜장면이 제일 별로였는데, 아무 냄새가 나지 않는 짜장면은 갈색빛이 나는 따뜻한 면일뿐이었다. 탄식이 나왔다. 아는 즐거움을 못 느끼는 것만큼 불행한 게 없다. 맛과 냄새의 행복을 모조리 빼앗기다니. 


다행히 이틀이 지난 후 80% 정도 회복되었다. 지금도 자가격리를 하고 있는 분들은 7일간의 방콕 혹은 집콕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모두가 무사히 이 시기를 이겨내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번 기회로 나는 두 가지를 깨달았다. 건강은 가장 소중하다. 그리고 나는 한 공간에 머물러 있는 걸 크게 답답해하지 않는다. 콕 처박혀서 맘 편히 책을 읽는 시간이 무엇보다 즐거웠다. 다행히 큰 증상이 없이 지나간 것에 감사하다. 한번 겪고 나니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이 더욱 걱정된다. 코로나의 미래는 무엇일까. 


그렇게 일주일은 참 빠르게도 지나갔다. 코로나를 지나오니 대통령이 바뀌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인생이 망한다면 그건 잠 때문 일거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