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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an 09. 2024

이제야 부르는 노래

제발 좀 나와 봐. 너를 만날 수 없어. 같이 놀자. 나 혼자 심심해.

“밥상 위에 젓가락이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나와 예린은 저녁을 일찌감치 먹은 뒤 계몽사 동요집을 탁자에 올려놓고 노래를 함께 불렀다.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보다 유치원생인 나와 동생의 목소리가 더 경쾌했다. 할머니는 연속극을 보고, 아버지는 누워서 책을 읽고, 엄마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는, 무난한 겨울밤이었다. 문제는 동요집을 한 장 넘기면서 벌어졌다. 서로가 생각하는 ‘가운데’가 달랐고 잠시 실랑이를 벌이다 동생은 나를 갈퀴눈으로 째려보더니 방으로 들어갔다. 예린은 언제든 따뜻함을 얼려버릴 준비를 하고 사는 아이 같았다. 동생이 떠나간 자리에서 울려 퍼지는 “리리리 자로 끝나는 말은 개나리 보따리 댑싸리 소쿠리 유리 항아리”는 우렁찼지만 내 목구멍은 이미 굳어버려서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인형은 있었지만 인형의 집은 없었다. 인형 놀이를 하기 위해 우리는 집안 곳곳에서 상자, 연필꽂이, 책, 수첩을 찾아왔다. 상자는 옷장으로, 연필꽂이는 변기로, 책은 침대로, 수첩은 소파로 자리를 잡았다. 책상 한가득 인형의 집이 완성되면 역할을 정했다. 내가 가위바위보에서 져서 예린이 공주가 되는 날은 괜찮았다. 문제는 내가 공주를 하는 날이었다. 예린에게 공주를 양보하면 해결될 일이었지만 나도 매번 왕자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일은 소꿉 놀이할 때도, 병원 놀이할 때도 일어났다. 예린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놀이를 할 수 없으면 눈매가 거칠어지다가 방으로 틀어박혔다. 그렇게 싸우고 토라지는 일은 다반사였고 예린이 떠나면 나는 잠시 세상을 잃은 기분마저 들었다.


윗집에 사는 나(혜린)와 예린, ‘린’ 자매는 아랫집에 사는 은영과 은준, 은혜, ‘은’ 남매와 친했다. 은영언니 나이가 가장 많았고 한 살씩 차이가 나서, 막내 은혜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1학년 은혜, 2학년 예린, 3학년 은준, 4학년 나, 5학년 은영언니로, 6학년만 빼고 모든 학년이 다 있었다. 주로 은영언니가 놀이를 주도했는데 학교 놀이를 즐겼다. 언니가 선생님을 하고 내가 반장을 하고 나머지 셋은 학생을 했다. 학년 대표가 모인 것처럼 앉아서 전교 회의를 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언니가 전교 회장, 내가 전교 부회장을 맡았다. 별말 없이 놀이에 참여하는 은준, 은혜와 달리 학생을 맡은 예린의 표정은 점점 딱딱해졌다. 예린은 무표정하게 있다가 작은 문제(의자에서 내려오라든가, 손을 올리라든가 시키면)에 “나 안 해.”라며 문을 쾅 닫고 집으로 돌아갔다. 둘이 놀다가 사라진 것보다는 덜 쓸쓸했으나 그런 예린을 따라가야 할지 아랫집에 남아도 될지 망설여졌다. 은영언니가 예린을 ‘별난 아이’ 취급할 때 고개를 끄덕였지만 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나를 휘감았다.


집 밖에서 예린의 말투는 조심스러웠고 행동은 조신했다. 예린이 커갈수록 집 안의 예린과 집 밖의 예린은 다른 사람 같았다. 자신에게 가까운 사람일수록 냉담했고 먼 사람일수록 다정했다. 엄마에게 그 옷을 입지 않겠다고, 운동화를 새로 사달라고 대들었고, 아버지에게 혼날 때면 끝까지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그 한 마디면 끝날 일인데도…. 물론 아버지의 요구가 부당할 때도 많았다.) 동생은 할머니에게 두 눈을 부릅떴다. 왜 마음대로 책상을 치우냐고, 빵을 먹어치운 사람은 할머니라고 말이다. 비난의 화살은 나에게도 날아왔다. 왜 말도 없이 자기 물건을 썼냐고, 왜 자기 옷을 입고 나갔냐고 말이다.(한편 나 몰래 예린이 내 옷을 입고 나간 것에 대해서는 당당했다.) 동생은 자랄수록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수틀리는 순간 모든 것을 뒤엎어버리는 아버지 같았다.


열 살 무렵의 늦여름, 학교 끝나고 집에 왔는데 문이 잠겨있었다. 엄마가 열쇠를 숨겨두는 항아리, 바가지를 샅샅이 뒤졌는데도 아무것도 없었다. 난간 옆 시멘트 바닥에 엉거주춤 앉아있기를 몇십 분, 집 앞에서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내 모습이 처량했다. 처량함이 화로 번져갈 즈음 발걸음 소리가 들렸고 엄마이길 바랐으나 동생이었다. ‘엄마가 올 때까지 꼼짝없이 또 기다려야겠구나.’ 낙심했는데 예린이 자신에게 열쇠가 있다며 가방을 열었다. 순간 부아가 치밀어 소리를 질렀다.

“열쇠를 가져갔으면 일찍 와야지. 왜 이제 와? 왜 네가 열쇠를 가져갔어?”

동생은 자신에게 아무 잘못이 없다는 듯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거칠게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가방을 내던졌다.

“열쇠 왜 가져갔냐고? 너 때문에 집에도 못 들어오고 밖에서 계속 기다렸는데 사과도 안 해?”

예린은 사나운 눈으로 나를 쏘아볼 뿐 여전히 말이 없었다. 다만 나는 예린의 경멸하는 표정에서 ‘네가 뭘 알아?’라고 말하는 것을 느꼈다. 예린은 언제나 피해자로 살고 싶은, 피해로밖에 자신을 설명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물으면 물을수록 예린은 억울한 얼굴 말고는 어떤 것으로도 자신을 설명하지 않겠다는 듯 입을 더 꾹 다물었다. 집 밖에서는 고상한 척하며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얼굴을 나에게만은 시도 때도 없이 지어 보였다.

나는 오른손으로 동생을 밀치며, 악다구니를 썼다.

“미안하다고 사과하라고, 아니면 왜 열쇠 가져갔는지 말하라고!”

동생은 내가 떠민 것보다 더 세게 넘어졌다. 순간 오래전에 들었던 아버지의 말이 머릿속에서 살아났다. “넌 왜 동생을 못 잡느냐. 찍소리 못하게 한번 때려줘.” 동생은 잘못했고 집에는 아무도 없었으며 아버지의 말은 나의 행동을 정당화하기에 충분했다. 동생에게 회초리를 들 수도 없었기에 나는 양손을 이용해 동생의 몸을 몇 대 더 때렸다. 맞아보긴 했으나 때리는 것은 처음이어서 모든 동작이 어색했다. 예린은 독기 어린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지만 그날은 피해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듯 맞기만 했다. 나는 그 순간 예린에게 아버지였다. 아버지처럼 소리쳤고 아버지처럼 휘둘렀다. 아버지가 고모와 작은아버지를 대했던 방식으로 예린에게 손을 댄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나와 예린 둘만 집에 있는 날이면 우리는 서로를 부모님처럼 감시하다가 어김없이 싸웠다. 시작은 말싸움이었지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몸싸움으로 이어졌다. 학교, 학원, 교회 어디서든 말 잘 듣고 모범적인 우리가 집에서 그토록 치열하고 끈기 있게 싸웠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다.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싸운 날에는 잘 때까지 머리통이 욱신거렸고 다음 날 아침에 빗질을 하면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졌다. 손등과 팔목에 남은 손톱자국은 영영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꼬집고 할퀴며 뜯겨나간 살점이 회복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가끔은 부엌에 있는 칼을 거실로 들고 왔다. 각자 무기로 쓸 생각은 못 했으나 ‘어디 한번 써봐.’ 하는 식으로 서로에게 내주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싸움이 시작되면 집 안에 있는 칼을 감췄던 할머니가 떠오른 것일까.


애초에 사랑을 배우지 못했으니, 서로를 사랑할 수 없었다. 충분히 외로웠는데 곁에 있으면 더 외로워졌다. 당초부터 받은 것이 상처밖에 없으니 줄 것도 상처밖에 없었다. 마음에 안 들면 무시했고, 화가 나면 소리를 질렀고, 그마저도 통하지 않으면 손질했다. 우리는 우리에게 잔인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아버지였다.



어쩌면 내가 동생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겨울왕국》의 이 노래였는지도 모르겠다.

“같이 눈사람 만들래? 제발 좀 나와 봐. 너를 만날 수 없어. 같이 놀자. 나 혼자 심심해.”

나는 사람을 참 좋아하는 아이였다. 방에 들어앉자 밖으로 나오지 않는 예린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같이 놀자.” 그거였다. 예린 곁에 있으면 아버지, 할머니뿐 아니라 엄마마저 온기를 잃었다. 예린은 정말이지 엘사 같았다. 빛나는 힘을 갖고 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자신을 가둬둘 수밖에 없는 아이…. 나는 그 곁을 서성이는 안나였다. 돌아선 이유를 알고 싶어서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허영인지 질투인지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실제로 문을 두드린 적은 몇 번 없지만 난 사실 그 말이 하고 싶었다.

“사실은 조금 외로워. 텅 빈 방에선 시계소리만 들려. 예린아, 제발 대답 좀 해봐.”


Photo by Eddie Wingertsah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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