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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만들어낸 굳은살

by 윤슬

"소장님, 이번에 혹시 제가 다른 곳으로 인사발령이 나고, 소장님도 올해 말까지 하신다니 여기가 잘 굴러갈지 너무 걱정이에요."


"괜찮을 거에요. 나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일들도, 결국엔 그 상황에 닥치면 다 해결되게 되어 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육십 인생을 살아보니,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일들도, 걱정스러운 일들도 결국엔 다 해결이 돼요."


작년 말에 공간조성을 끝내고 올 초부터 운영을 시작하려는 터에, 우리 과 과장님과 팀장님이 바뀌고, 센터를 운영하는 조직의 부서장과 임원들이 바뀌었다. 새로운 임원들은 이 공간에 대해 부정적이었고, 서로 떠맡기 싫어하는데 작년에 예산을 투입했으니 어쩔 수 없이 개소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누구 하나 책임지기 싫어하는 이 공간이 잘 운영될까. 이 공간의 조성과정과 운영 체계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건 나와 소장님 밖에 없었다. 현장을 봐주시는 소장님은 올 11월에 계약이 만료될 예정이고, 나 또한 하반기에는 타 부서로 인사 발령이 날 확률이 높았다.


이곳이 잘 운영될까. 푸념 섞인 걱정을 털어놓자, 소장님은 단단한 미소를 지으며 말씀해 주셨다. 괜찮을 거야, 잘 될 거야. 그저 가볍게 스치고 지나가는 말이 아니었다. 담담하게 내뱉는 말씀에 단단한 확신이 느껴졌다. 그 단단함이 느껴져서일까. 켜켜이 쌓였던 걱정이 녹아내렸다.


문제 상황을 마주했을 때의 단단한 확신. 비단 소장님께만 느낀 것이 아니었다. 직장 생활 이십 년을 훌쩍 넘긴 전 팀장님과 현 팀장님을 볼 때면 종종 느꼈던 태도였다. 그리고 가깝게는 부모님까지. 그들은 문제 상황이 터졌을 때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동요하더라도 "해결하면 돼. 결국엔 다 풀리게 되어있어."라는 단단한 확신이 있었다.


타고난 걱정쟁이인 내 입장에서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확신을 갖지. 문제 상황이 생기면 현재 상황은 어떤지,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그 이유에 따른 해결방안은 무엇인지. 이성의 영역으로 해결방법을 고안해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할 수 있을까, 잘 될 수 있을까.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이렇게 방안을 마련해 놓더라도 이게 과연 효과가 있을지, 문제가 해결될지 확신이 없었다. 걱정이었고, 불안했다.


나와 그들의 차이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세월을 지나며 얻게 되는 굳은살의 차이지 않을까. 출장을 갈 때면 듣게 되는 소장님의 인생 이야기, 업무를 보며 팀장님들이 해주시는 직장 생활을 하며 겪었던 이야기, 부모님이 해주시는 지난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 이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들의 삶이 결코 순탄치 않았다. 숱한 위기를 겪고, 그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결국엔 그 위기를 이겨내고. 종류도 분야도 다양한 문제들을 겪으며 하나둘 박인 굳은살이 그들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 굳은살을 통해 당장은 큰 일 같아도 인생을 길게 보면 별일 아니라는 단단한 확신을 가졌다.


아직은 그들만큼 세월의 풍파를 겪지 못해 여리디 여린 살이기만 하다. 작은 생채기에도 쓰라리고 아프기만 하다. 하지만 한순간에 굳은살이 생길 순 없을 테니까. 물집이 잡혔다고, 그 물집이 터져서 아프다고 그만두면 굳은살이 생기지 않는다. 아픔을 견디고 계속 마주해야 굳은살이 생기고, 그 굳은살로 인해 더 단단해지게 된다.


굳은살은 쉽게 생기지 않는다. 지금의 과정을 겪어야만, 나도 그들처럼 단단한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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